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이 한창인 미국에서 국가 안보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해외 테러 조직과 적대국의 통신을 추적하는 핵심 감시 권한이 정치권 대립 속에 만료됐기 때문이다. 미국 정보당국은 당장 보안 공백은 없다고 설명하지만, 월드컵과 미국 건국 250주년 기념행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첩보 수집 능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블룸버그는 17일(현지 시각) 외국정보감시법(FISA) 702조가 만료되면서 미국 정보기관의 활동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조항은 미국 정보기관이 해외 외국인들 대상으로 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한 권한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 대테러 체계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았으며, 정보기관들은 이를 통해 해외 테러 조직과 적대 세력의 움직임을 추적해 왔다.
그러나 이 조항은 지난 13일 만료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이 국가정보국(DNI) 수장 인선을 둘러싸고 충돌하면서 연장안 처리도 함께 표류한 것이다. 갈등의 중심에는 빌 풀티 연방주택금융청(FHFA) 청장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측근으로 분류되는 풀티를 국가정보국장 직무대행에 임명했지만, 민주당은 정보·안보 분야 경험이 부족한 데다 정보 권한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출신인 제이 클레이턴을 정식 국가정보국장 후보로 지명했다. 민주당은 클레이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수용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상원 인준 절차를 연기하면서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풀티의 직무대행 체제를 더 오래 유지하려 한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감시 권한 연장안에 자신의 이민 정책까지 연계하려 하면서 초당적 합의는 더욱 어려워진 상태다.
공화당은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원 정보위원회 소속 마이크 라운즈 의원은 "이 조치로 미국은 훨씬 덜 안전해졌다"고 경고했다. 국가안보국(NSA) 법률고문을 지낸 글렌 거스텔 역시 "국가안보를 놓고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같다"며 "스스로 발등을 찍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정보당국이 특히 신경 쓰는 것은 월드컵과 같은 대형 국제 행사다. 수십 개국 선수단과 수백만 명의 관중이 이동하는 월드컵은 전통적으로 테러 조직과 사이버 범죄 세력의 주요 표적 중 하나로 꼽힌다. 경기장 경비뿐 아니라 티켓 시스템, 교통망, 호텔, 통신 인프라, 금융 결제 시스템까지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시 파텔 FBI 국장은 최근 백악관에서 열릴 예정인 'UFC 아메리카 250' 행사에 대한 공격을 모의한 용의자 여러 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감시 활동이 아니라 용의자 가족의 제보로 적발됐지만, 월드컵이나 대규모 국가 행사와 같은 상징적 이벤트가 여전히 테러 위협의 표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다만 정보기관의 감시 능력이 당장 마비되는 것은 아니라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외국정보감시법원(FISC)은 이미 승인된 감시 활동을 내년 3월까지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한 상태다. 따라서 기존 감시 대상에 대한 정보 수집은 계속 가능하다.
또 미국 정보기관들은 월드컵 같은 국제 행사를 수개월, 수년 전부터 준비해 왔다. 전직 비밀경호국 요원이자 사이버보안 전문가인 저스틴 밀러는 "월드컵은 상징성과 주목도가 큰 행사인 만큼 오래전부터 보안 계획이 수립돼 왔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는 그럼에도 우려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통신·인터넷 기업들의 협조 여부가 불확실해졌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미국 정보기관은 AT&T와 버라이즌, T모바일, 구글 등 통신·플랫폼 기업의 협조를 통해 감시 대상의 통신 정보를 확보해 왔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약해진 상황에서 일부 기업이 정부 요청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법적 다툼에 나설 경우 정보 수집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상원 정보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마크 워너 의원은 "현재까지는 통신사들이 계속 협조하고 있다"면서도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감시 권한 만료가 당장 미국의 대테러 역량을 약화시키지는 않더라도,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 활동에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