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8일 개전 이후 106일 동안 세계 경제를 짓누르며 중동 전역을 화약고로 만들었던 미국과 이란 전쟁이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14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본인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성명에서 "이슬람 공화국 이란과 거래가 이제 완료됐다"며 "모두에게 축하를 전한다"고 밝혔다. 이어 "본인은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없는 개방을 전면 승인하고, 이와 동시에 미국 해군 봉쇄를 즉각 해제할 것을 승인한다"며 "전 세계 배들은 엔진을 켜라. 석유가 흐르게 하라"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마당에 특별 경기 무대를 설치하고 치러진 거대한 행사 직전 평화 협정 사실을 직접 공개했다. 백악관에서 미국 독립선언 250주년과 트럼프 대통령 8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종합격투기 대회 UFC 행사가 열리기 2시간 전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5월 20일 메릴랜드주 앤드류스 합동기지에서 에어포스원에서 내린 후 기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거의 동시에 종전 협상에서 핵심 중재자 역할을 맡았던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합의 타결 사실을 전 세계에 공식적으로 알렸다. 샤리프 총리는 "집중적인 회담 끝에 미국과 이란 이슬람 공화국 간 평화 협정이 타결되었음을 발표하게 되어 기쁘다"며 "양측은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군사 작전을 즉각적이고 영구적으로 종료한다고 선언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주 기술적 세부 논의를 위한 추가 회의가 이어지며, 오는 19일 스위스에서 공식 서명식이 열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AP, 로이터 등 주요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은 이란 주요 항구 봉쇄를 풀고 경제 제재를 완화해 이란이 다시 국제 시장에 석유를 판매할 길을 열어주기로 합의했다. 250억 달러(약 38조 원)에 달하는 이란 동결 자산 해제도 핵심 조건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가장 첨예한 쟁점으로 꼽히는 이란 핵 프로그램 완전 폐기 문제와 영구적 평화 정착 방안은 향후 60일 동안 이어질 추가 협상을 통해 매듭짓기로 뜻을 모았다.

이란은 최종 평화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우라늄 농축이나 핵 시설 확장을 중단하고 현재 상태를 동결하는 데 동의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이란은 무기급 핵물질로 전환하기 쉬운 고농축 우라늄을 대량 보유하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14일 CBS에 출연해 이번 합의가 철저히 성과에 연동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란이 이행하기 전까지 어떤 자금도 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금 해제와 이란의 실제 조치를 맞바꾸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미국과 함께 이번 전쟁을 시작했던 이스라엘은 이번 논의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이스라엘군은 미국과 이란이 합의한 당일인 14일에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외곽 다히예 지역을 폭격하며 군사적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다히예는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핵심 근거지로 꼽히는 거점이다.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국방부와 공동 성명을 내고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를 향해 로켓과 무인기 공격을 감행해 명백히 휴전 원칙을 위반했다"며 폭격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과 재차 이견을 보였다. 휴전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스라엘은 스스로 방어할 권리가 마땅히 있지만 이번 사태는 사상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은 매우 작고 의미 없는 공격이었다"며 "이런 공격에 대응하느라 평화를 향한 이 중요한 과정을 방해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네타냐후 총리를 공개 비판했다.

14일 이란 테헤란 중심부 엥게라브 광장에서 한 이란 여성이 이란과 미국의 협상을 묘사한 벽화 앞을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 유가 기준인 브렌트유는 합의 소식 직후 시장에서 배럴당 84달러대로 내려앉았다. 전쟁이 터지기 전인 2월 말과 비교하면 여전히 20% 정도 높지만, 개전 직후 110달러를 웃돌던 정점에서는 크게 물러섰다. 원유와 천연가스, 비료 등 전 세계 물동량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면 공급망 불안도 풀릴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19일 스위스에서 종전 서명식이라는 최종 목표 지점에 무사히 도달하려면 이란 내 강경 세력들의 거센 내부 반발을 현 지도부가 어떻게 잠재울지, 이스라엘이 무력 시위를 이어갈 경우 미국이 이를 어떻게 다룰지 여부에 주목했다. 이란 내부에서는 합의 이후에도 복잡한 파열음이 새어 나오고 있다. 이날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측은 성명을 내고 "미국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 생일 14일에 무조건 맞춰 종전 양해각서에 서명하려 무리한 억지를 부렸다"고 반발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엄중한 평화 협상 서명식을 개인 정치 홍보 수단으로 철저히 이용하려 한다"는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협상 대표는 14일 합의를 앞두고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폭격하자 "이스라엘 통제조차 못 하는 미국이 약속을 이행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란 강경파 일각에서는 체결될 합의안이 이란을 미국 식민지로 전락시킬 것이라며 외무장관 탄핵까지 거론하며 극렬히 대립하고 있다. 체제 내부 갈등이 위험 수위로 치닫자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국론 분열이 오히려 국가 협상력을 떨어뜨린다며 단합을 촉구하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