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이란 최고위 인사들의 동선을 추적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각국 정보기관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경호에 사용되는 특수 감시 시스템 일부를 일시 중단하고 긴급 보안 점검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 안보를 위해 설치한 CCTV가 오히려 적국의 첩보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8일(현지 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 보안 당국이 푸틴 대통령과 측근들을 보호하기 위해 운영하는 별도 감시 시스템의 일부를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모스크바 시내 약 30만 대의 CCTV와는 별도로 운영되는 이 시스템은 엔지니어들이 인터넷 연결 여부를 전면 점검한 뒤에야 재가동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이 같은 조치를 취한 배경에는 최근 이란에서 벌어진 고위 인사 암살 작전이 있다. FT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이란 전역의 교통카메라와 각종 영상 데이터를 확보한 뒤 AI를 이용해 수백만 시간 분량의 영상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고위 인사들의 이동 경로와 경호 패턴을 파악하고 특정 회의 장소와 시간을 추적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FT는 이번 사건이 AI가 감시 기술의 판도를 바꾸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했다. 과거 영상 분석은 얼굴 인식이나 차량 번호판 추적 등 제한된 기능에 머물렀지만, 최근 기술은 자연어 명령만으로 방대한 영상 데이터에서 특정 행동을 찾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가방을 주고받는 두 사람"이나 "하루 동안 여러 차례 옷을 갈아입은 인물", "최근 도색된 차량" 등을 검색하면 AI가 수천 대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 속에서 해당 장면을 골라내는 식이다. 유럽의 한 보안 당국자는 FT에 "이제는 물체가 아니라 행동을 찾는 시대가 됐다"며 "감시 기술의 성배에 가까운 발전"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도 이 같은 위험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국장은 최근 보안 관계자들에게 "이란 고위 관리 제거 사례는 분명한 경고 신호"라며 영상 감시 시스템의 취약성을 경고했다. 그는 특히 감시 카메라 시스템에 존재하는 소프트웨어 백도어(은닉된 접근 통로)가 적국에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AI가 CCTV뿐 아니라 소셜미디어(SNS), 해킹된 통신 기록, 스마트 기기 데이터, 이동 이력 등 다양한 정보를 결합해 특정 인물의 생활 패턴과 인간관계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번 표적이 특정되면 수개월치 활동 기록이 순식간에 정리돼 사실상 '디지털 파일'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술 경쟁은 중국에서도 본격화하고 있다. FT는 중국이 행동 패턴 분석과 자연어 기반 영상 검색이 가능한 차세대 AI 감시 시스템 구축에 투자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서방 정보당국은 "중국이 카메라를 설치하면 우리는 침투할 방법만 찾으면 된다"며 감시망 자체가 역으로 취약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