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이 개전 석달을 앞둔 가운데, 카타르가 미국과 이란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오만과 파키스탄에 이어 세번째 중재국이다. 오만이 전쟁 초기 미국과 이란 사이 대화 문을 열고, 이후 파키스탄은 첫 휴전안을 중재했다. 카타르는 호르무즈 항로 통제와 이란 동결 자금 처리, 핵 물질 관리 같은 의제를 중점적으로 다룰 것으로 보인다.
25일(현지시각)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란 의회 의장이자 협상단장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 압돌나세르 헴마티 중앙은행 총재는 도하에서 카타르 총리와 회담을 가졌다. CNN은 이날 도하 회담 사정에 정통한 외교 관계자를 인용해 "이날 논의는 호르무즈 해협 항행, 이란 동결자금 처리, 고농축 우라늄 재고가 한 묶음으로 다뤄졌다"고 했다.
카타르에 앞서 미국과 이란 사이 첫 대화 물꼬를 튼 국가는 오만이었다. 오만은 2013년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미국과 이란 사이 비밀 채널을 유지했다. 2013년 오만 수도 무스카트에서 열린 미·이란 비공개 대화는 2014년 제네바 잠정합의로, 다시 2015년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이란 핵합의) 타결로 이어졌다. 지난해 4월 무스카트에서 열린 미·이란 간접 핵 협상에서도 미국 측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와 이란 측 아라그치 외무장관은 직접 마주 앉지 않고, 오만 외무장관이 두 방을 직접 오갔다.
그러나 오만은 호르무즈 해협 통항, 원유·LNG 수출, 동결자금 같은 거시 의제를 동시에 처리하기에는 자국 자본력이 떨어지고, 에너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하다. 세계은행 기준 오만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2024년 1070억 달러(약 162조 원)로 카타르 2180억 달러(약 330조 원), 파키스탄 3380억 달러(약 512조 원)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친다. 알자지라는 전문가를 인용해 "오만 외교가 체면을 보존하는 백채널 영역에서는 강하지만, 자금 이동이나 해상 안전 보증 같은 이행 단계에서는 별도 보증 국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파키스탄은 첫 휴전을 가장 적극적으로 중재한 국가다. 파키스탄은 전쟁 발발 이후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최소 6차례 메시지를 전달했다.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와 외교장관 같은 행정부 주요 인사들은 중동 각국과 30차례 넘게 접촉했다. 파키스탄은 이란과 국경을 1000km 가까이 맞댄 이슬람권 국가다. 자국 내 미군 기지를 두지 않아 이란 입장에서 '미국 측'으로 비치지 않는 드문 국가에 속한다. 파키스탄은 즉각 휴전과 포괄 합의라는 2단계 휴전 핵심 구상까지 미국과 이란에 제안할 정도로 중재에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파키스탄 역시 이란 측 동결 자금이나 호르무즈 항로·핵 의제까지 다루기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파키스탄은 현재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로, 2024년에는 외환보유고가 한때 80억 달러(약 12조 원)까지 줄어 외환위기 직전까지 몰렸다. 자국 경제 상태가 위기라, 미국 재무부 제재 우회 자금을 받아주거나 보증할 재정 여력이 없다. 호르무즈 해협에서도 1200km 떨어진 내륙 국가라 항로 문제와 거리가 멀다. 알자지라는 "이란 지도부와 트럼프 행정부는 5월 중순부터 파키스탄을 통해 들어온 제안을 두 나라 모두 잇따라 거부했다"며 "미국과 이란이 오만이나 카타르 같은 다른 채널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파키스탄 역할이 밀려났다"고 했다.
반면 카타르는 현재 이란 동결 자금을 직접 보관하고 있는 자원부국이다. 최근 미국과 중동 세력 사이를 중재한 경력도 있다. 카타르는 앞서 2020년 도하 합의를 통해 미국과 탈레반 사이 19년 전쟁을 중재했다. 2023년 12월에는 미국·베네수엘라 인질 교환도 카타르가 중재했다. 카타르는 2023년 8월 미국과 이란 사이 인질 5명을 맞교환하면서 당시 한국에 묶여 있던 이란 원유 대금 60억 달러(약 9조1000억 원)를 카타르 계좌로 옮겼다. 카타르 중앙은행은 현재 이 자금을 통제하는 결제 창구 역할을 맡아 미국 재무부가 의약품·식량 같은 인도적 품목 결제에만 쓰도록 책임지고 있다.
이 자금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직후 미국이 다시 동결했다. 이란인터내셔널은 협상 사정에 밝은 관계자를 인용해 "이란은 1단계 양해각서(MOU) 전제 조건으로 카타르에 묶인 120억 달러(약 18조1700억 원) 접근권 보장을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미·이란 1단계 양해각서에서 최대 걸림돌은 핵 포기 문제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 여부다. 이란은 '돈을 먼저 주면 해협을 열겠다'는 입장으로, 미국은 이에 '해협을 열고 핵물질을 치우는 걸 확인해야 돈을 주겠다'고 맞서고 있다.
카타르는 미국이 이란에 직접 현금을 건네지 않으면서 자금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우회로다. 이란은 현재 강도 높은 미국 제재로 당장 쓸 외화가 급하다. 미국은 행정 절차나 국내 정치적 반발을 감안하면 당장 동결한 이란 자금을 풀기 어렵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재국 카타르가 이란에 먼저 대출을 해주고, 합의 이행이 확인되면 미국이 동결 계좌 락(Lock)을 풀어 카타르가 대출금을 수거해가도록 설계하자는 안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 분석가 샤히르 샤히드살레스는 이를 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지도부에 현금을 직접 건네는 모양새를 피하면서도 이란 핵심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카타르가 중재와 동시에 일종의 재정적 완충 지대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카타르는 휴전 여부에 따라 자국 이해관계가 큰 폭으로 출렁인다. 카타르는 호주와 함께 세계 LNG 수출 1·2위를 다투는 국가다. 로이터에 따르면 전쟁 전 세계 LNG 교역의 약 2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고, 이 중 상당 물량이 카타르 수출분이었다. 그러나 개전 이후 이란이 사실상 해협을 봉쇄하면서 카타르 LNG 수출선은 멈춰 섰다. 카타르 정부 회계에 따르면 LNG·원유 부문은 GDP의 절반을 넘는다. 호르무즈가 계속 닫혀 있으면 카타르는 에너지 가격 상승 수혜국이 아니라 수출 차질을 떠안는 피해국이 된다.
미국 입장에서 카타르는 이란과 말이 통하면서 동시에 중동에서 미국 안보 구조 안에 들어와 있는 사실상 유일한 중재자다. 카타르는 미국의 주요 비(非)나토(NATO) 동맹국이고, 수도 도하 인근 알우데이드 공군기지는 중동에서 가장 큰 미군 시설이다. 현재도 미군 약 1만 명이 카타르에 주둔한다. 이란 입장에서도 카타르는 미국을 대면해 직접 양보하는 그림을 피하면서 동결 자금과 호르무즈 항로 문제를 동시에 풀어낼 최적의 통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