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미국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호르무즈 해협에서 위험천만한 원유 수송을 감행해 약 900억 원의 차익을 올린 스위스 신생 무역회사가 국제 원자재 시장의 화제로 떠올랐다.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조차 전쟁 리스크를 우려해 몸을 사리는 사이, 소형 무역상이 전쟁 프리미엄을 노리고 승부수를 던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에 선박들이 떠 있는 모습. /로이터

블룸버그는 25일(현지 시각)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스위스 제네바 소재 원유 무역회사 리튼(Lytton SA)이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이라크산 원유 약 200만 배럴을 반출해 약 6000만 달러(약 900억원)의 총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이번 거래의 중심에는 초대형 유조선(VLCC) '아기오스 파누리오스 1호'가 있었다. 이 선박은 이라크 바스라항에서 원유를 싣고 베트남으로 향하던 중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당국의 제지를 받았다. 이후 해협을 빠져나온 뒤에는 미 해군이 선박 정지 및 검사를 요구하면서 수일 동안 항해가 중단됐다.

당초 시장에서는 베트남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베트남이 거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블룸버그는 실제로는 리튼이 이번 거래를 전면 지휘했다고 전했다. 세계 최대 원자재 기업들이 전쟁 리스크를 우려해 발을 빼는 동안 신생 업체가 고위험 거래를 감행한 것이다.

리튼은 이번 거래에서 막대한 차익을 남긴 것으로 추산된다. 리튼은 이라크산 원유를 기준 유가보다 배럴당 약 18달러 낮은 가격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 바깥에서 거래되는 원유 가격이 급등한 점을 고려하면 한 차례 항해만으로 수천만 달러의 차익이 발생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수익이 모두 순이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란과의 무역 충돌 이후 선박 운임이 폭등하면서 이번 항해에 투입된 운송 비용만 3500만~4000만 달러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선박 억류로 인한 정박료 부담까지 더해졌다.

리튼은 트라피구라 출신 석유 트레이더 하킴 다르부슈와 오넥스 DMCC 전 임원 엘런 코냐르가 2024년 설립한 회사다. 업계에서는 이번 거래를 계기로 리튼이 국제 원유 시장에서 단숨에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란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자, 이라크 국영 석유회사도 파격적인 할인 판매에 나서며 걸프만 내부에 고립된 원유를 처분하려 애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는 일부 거래에서는 할인 폭이 배럴당 최대 33.4달러에 달한다고 전했다. 평상시 배럴당 몇 센트에 수준에 불과했던 원유 트레이딩 마진이 전쟁 이후 20~30달러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이른바 '전쟁 마진' 시장이 형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최근에는 글로벌 메이저 업체들도 움직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비톨(Vitol) 등 대형 원자재 기업들도 최근 호르무즈 해협 밖에서 선박 간 환적(STS) 방식으로 이라크산 원유 거래를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고유가와 전쟁 프리미엄을 노린 위험 거래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미국의 대이란 금융 제재는 변수로 꼽힌다. 현재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들에 통행료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재무부는 최근 "이 같은 비용을 지불하는 외국의 어떤 기업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리튼과 선박 관리 회사 측은 "이란에 어떠한 통행료도 지불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