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또 다시 최후통첩을 보냈다. 전날 예고했던 대규모 군사 타격을 보류한 직후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공격 결정을 내리기 한 시간 전이었다"며 이란이 "2~3일, 늦어도 다음 주 초" 안에 합의하지 않으면 군사 행동을 재개하겠다고 경고했다.
외교 용어로 최후통첩은 한 국가가 상대국에 시한을 붙여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불응 시 무력 행사·봉쇄·외교 단절 같은 결과가 자동으로 따른다고 통보하는 마지막 단계다. 이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2월 28일 개전 이후 이란에 던진 명시적 시한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선다(TACO)'는 조롱이 다시 나왔다. 하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백악관 책상 위에는 표적 좌표까지 박힌 실제 공습 명령서가 올라와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군은 실제 발사 작전을 직전까지 준비했다. CNN은 고위 복수 관계자를 인용해 미군이 이란을 상대로 한 다단계 공습 계획을 마련했고 "표적과 좌표, 작전 단계까지 구체화된 상태"라고 전했다. 한 관계자는 작전 진전 수준을 두고 "장난 수준이 아니었다"고 했다. JD 밴스 부통령도 19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미국이 "장전 완료(locked and loaded)" 상태라며 "이란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영구적 핵 차단 합의, 아니면 군사작전 재개"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 보류를 발표한 18일 저녁 버지니아주 본인 골프클럽에서 핵심 안보 참모와 회의를 열었다. 회의 의제는 이란전 향방과 다양한 군사옵션 보고였다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회의에는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댄 케인 합참의장,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 등 이번 전쟁에 관한 결정권을 쥔 핵심인물이 대부분 참여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미국이 공격을 포기한 게 아니라, 옵션을 손에 쥔 채 시간을 벌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외신에 따르면 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정상들은 이란 측 보복을 우려해 미국에 군사행동 보류를 요청했다. 미국이 이란 본토를 때리면 1차 보복 표적은 미국이 아니라 걸프국 원유 시설과 미군 기지가 될 공산이 크다. 걸프뉴스는 정상들이 미국에 "통일된 전선(unified front)"을 제시했다고 했다.
19일 UAE 국방부는 재공습을 앞두고 17일과 18일 48시간 동안 영토를 침범한 적대적 드론 6대를 요격했다고 밝혔다. 17일에는 이라크 영토에서 바라카 원전을 노린 드론이 발사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호르무즈 통항 보호 작전 '프로젝트 프리덤' 당시 미군의 자국 기지·영공 접근을 한때 제한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기자들에게 "이란이 보복 능력을 조금은 갖고 있다. 많지는 않지만 약간"이라고 했다.
호르무즈 해협과 유가도 재공습 결단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영국·캐나다 등 미국을 포함한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은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롭고 안전한 통항 복원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파이프라인 여유 용량은 하루 260만 배럴에 그쳐 대체가 불가능하다. 에너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주 미국 전략비축유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990만 배럴이 빠져나갔다. 재고는 2024년 7월 이후 최저 수준인 약 3억7400만 배럴까지 떨어졌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같은 날 호르무즈 봉쇄로 걸프 원유 접근이 막힌 에너지 취약국들이 해상에 발이 묶인 러시아산 원유를 살 수 있도록 30일간 제재 면제를 연장했다. 베센트 장관은 개전 직후였던 3월에도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자 30일짜리 이란산 해상 원유 판매 면허를 발급해 약 1억 4000만 배럴을 시장에 풀었다.
물가 상승기에 전쟁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미 의회 견제도 거세다. 미국 전쟁권한법(War Powers Act)은 대통령이 군사 행동을 개시하면 60일 안에 의회 승인을 받도록 못 박고 있다. 의회조사국(CRS) 자료에 따르면 개전 이후 지금까지 미군은 항공기 42대가 잃었고, 미군 14명이 전사했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미국 성인 가운데 64%는 이란전을 잘못된 결정으로 평가했다. 국무부가 이달 초 밝힌 전쟁 소모 비용은 290억 달러(약 43조 7900억 원)에 달한다. 한국 정부가 지난 한 해 국방 예산(65조 8600억 원) 대비 3분의 2 규모다.
비용 부담과 미국 내 반감이 커지자 19일 미 상원은 이란전을 끝낼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본회의 표결대에 올리는 절차 투표를 50대 47로 통과시켰다. 최종 가결은 아니지만, 그동안 위원회에 묶여 있던 결의안을 본회의장으로 끌어내는 1단계 관문을 넘었다.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빌 캐시디 의원을 포함한 의원 4명이 민주당 편으로 돌아섰다.
이번 최후통첩은 2월 28일 개전 이후 세 번째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전 후 한달여가 지난 3월 22일 호르무즈 해협을 48시간 안에 열지 않으면 이란 발전소를 타격하겠다고 했다. 4월 6일에는 "화요일 밤까지 합의하지 않으면 인프라를 대규모로 공격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21일 휴전 무기한 유예 선언까지 포함하면 네 차례다. 악시오스는 이란이 최근 역제안에서도 핵 농축 같은 핵심 쟁점에서 의미 있는 양보를 내놓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전직 해군 중장 로버트 하워드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시간은 미국 편이다. 봉쇄와 제재가 이란 경제를 갉아먹도록 두면 된다"고 했다. 이란이 핵 농축 사안을 양보하지 않은 채 이번 기한을 흘려보낸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드론 기지나 해군 시설을 노린 제한적 정밀 타격을 명령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군사적 압박은 늦췄지만, 대이란 경제 압박은 이어지고 있다. 미 재무부는 이날 이란 외환거래소, 유령 함대 선박 19척을 포함해 50곳 이상에 추가 제재를 부과했다. 베센트 장관은 프랑스 파리 회의에서 "테러 자금 차단에 있어서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no room for excuses)"고 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 사령관 브래드 쿠퍼 제독도 이날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해상 봉쇄로 상선 88척을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봉쇄 작전이 "이란 항구로 들어가고 나오는 무역을 제로(zero)로 만들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