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으로 유럽과 아시아가 석유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미국의 석유제품 수출량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다만 이 같은 수출 호황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악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현지 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자료를 인용해 지난주 미국 정유사들의 휘발유·경유·항공유 등 정제유 수출 규모가 하루 820만배럴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급증한 수준으로, 사상 최대 기록이다.
이란 전쟁 여파로 해외 수요가 급증하면서 미국 정유업체들은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현재와 같은 가격 수준이 유지될 경우 미국 정유업체들의 잉여현금흐름(FCF)은 올해 600억달러(약 87조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석유제품 수출 증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산 정제유가 대거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약 3.78리터)당 4.53달러로 4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특히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기름값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부담이다.
여기에 수출 증가로 미국 내 석유 재고까지 빠르게 줄어들면서 공급 부족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사모펀드 칼라일의 에너지 선임고문 제프 커리는 미국의 석유 재고 감소 속도가 빨르다고 진단했다. 특히 미국의 경유 재고는 20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커리는 "공급 부족은 공급이 끊길 때가 아니라 재고가 바닥날 때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연료 수출을 제한하지 않겠다던 트럼프 행정부가 결국 수출 규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증권사 미즈호증권의 원자재 전문가 로버트 예거는 "행정부 입장에서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휘발유 평균 가격이 갤런당 5달러에 도달하면 결국 수출 제한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제유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크게 출렁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군사작전이 곧 종료될 것이며 호르무즈 해협이 개방될 것이라고 언급하자 국제 원유 거래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109달러까지 치솟았다가 한때 97달러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한편, 수출 증가에 힘입어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원유 순수출국이 됐다고 FT는 전했다. 미국은 약 10년 전만 해도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 가운데 하나였지만,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약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 전쟁 여파로 봉쇄되면서 에너지 공급의 핵심 국가로 부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