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여파로 두바이에 거주하던 부유층과 금융 인력들이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스위스의 소도시로 몰리고 있다.
12일(현지 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구 13만5000명의 도시인 스위스 추크(Zug)가 중동 자산가들의 새로운 탈출구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신변 안전과 자산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부유층들의 수요가 폭증한 탓이다. 본래 추크주는 낮은 법인세와 파격적인 규제 완화 덕분에 '크립토 밸리(암호화폐 성지)'로 불리던 곳이다.
하인츠 탠러 추크주 재무국장은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자산가와 패밀리 오피스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면서 "상황 자체는 유감이지만, 우리 주가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 것은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지의 열기는 과열 양상이다. FT에 따르면 추크 내 한 은행은 전쟁 이후 미국계 은행 출신 인력들의 구직 이력서가 평소보다 4배나 늘었다. 한 프라이빗뱅커(PB)는 "방 2개짜리 임대주택 공개 행사에 수십 명이 몰려 대기 줄이 블록을 한 바퀴를 메울 정도였다"며 "내 뒤에 서 있던 이는 그날 아침 두바이에서 날아온 자산가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위스 이주에는 높은 문턱이 기다리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고질적인 주거난이다. 추크는 임대 물량이 극도로 부족해 매물이 나오면 단 며칠 만에 소진된다. 비(非)유럽연합(EU) 국적자의 경우 취업 계약이나 법인 설립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거주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장벽이다. 초고액 자산가의 경우 생활비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일괄 과세' 제도를 활용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사전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낙수효과'를 누리는 지역도 생겨났다. 추크에서 밀려난 자산가들이 남부 이탈리아어권 도시 루가노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루가노는 주택 공급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고, 생활비 기준 일괄 과세 협상이 수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지 부동산 관계자는 "이탈리아·프랑스·영국계 두바이 거주자들이 대거 이동을 준비 중"이라며 "현재는 시작 단계일 뿐, 중동 정세에 따라 이주 행렬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