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공들여 추진해 온 대이란 화해 전략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이란이 사우디를 포함한 걸프 국가들을 겨냥해 보복에 나섰기 때문이다.
빈 살만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란 최고지도자였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중동의 히틀러"라고 맹비난하며 강경 노선을 고수했다. 그러다 2023년 중국의 중재로 이란과 국교를 정상화하며 외교 전략을 선회했다. 경제 개발과 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지역 안정이 필수라는 판단에서 숙적과 손을 잡는 도박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그 구상을 정면으로 뒤흔들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궁지에 몰린 이란이 사우디 내 미군 기지와 핵심 유전 시설인 라스 타누라, 샤이바 등에 보복 공격을 가하면서 사우디는 직접적인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프린스턴대 중동 전문가인 버나드 하이켈 교수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에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상황은 왕세자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쟁 장기화는 빈 살만이 추진 중인 '비전 2030'에 치명타다. '비전 2030'은 외국인 투자와 관광 산업 확대가 핵심인데, 불안정한 안보 환경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실제로 오는 4월 예정이던 사우디·바레인 포뮬러1(F1) 그랑프리는 취소됐다. FT는 전쟁이 장기화되면 사우디의 거대 도시 프로젝트 '네옴' 등에 투입될 자금이 국방비로 재편입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아민 나세르 아람코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사태는 지역 석유·가스 산업이 직면한 역대 최대의 위기"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는 급격히 냉각됐다. FT는 "현재 양국 간 접촉은 고위급이 아닌 대사급 수준에 머물고 있다"면서 "사우디 내부에서는 이란과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환상은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전했다. 결국 빈 살만이 '안정'을 위해 선택했던 대이란 화해 전략은 역설적으로 중동 전역의 불안을 키운 변수로 돌아왔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