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석유 가스 업계를 대변하는 이른바 '빅오일'이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이례적인 '반기'를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요한 해상풍력 때리기가 역설적으로 석유 업계의 최대 숙원인 인허가 개혁 입법을 가로막는 자책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챗GPT·달리3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석유협회(API)를 포함한 주요 에너지 로비 단체들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 측에 해상풍력에 대한 공세를 중단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부터 해상풍력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며 매사추세츠에서 버지니아에 이르는 주요 프로젝트를 중단시켰다. 지난달 석유 업계 경영진과의 회동에서도 "나의 목표는 단 하나의 풍력 터빈도 세워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며 "풍력은 최악의 에너지 형태이자 가장 비싼 에너지 형태"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제는 민주당의 맞불 전략이다. 상원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가 재생에너지인 풍력 프로젝트를 고의로 고사시키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석유·가스 업계가 그토록 원하는 '에너지 개혁법' 협상을 전면 거부하고 나섰다.

현재 미국에서 석유 파이프라인 하나를 깔려면 각종 환경 규제와 소송으로 인해 족히 수년이 걸린다. 석유 업계는 이 규제 대못을 뽑기 위해 인허가 절차 간소화 입법을 추진해 왔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풍력 공격이 민주당을 자극하면서 입법 자체가 미궁에 빠진 것이다.

미국 최대 천연가스 생산 업체인 EQT의 최고경영자(CEO)인 토비 라이스는 "인프라가 병목 현상을 일으켜 가스를 뽑아내도 시장에 보낼 길이 막힌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결국 석유 업계 입장에서는 파이프라인을 뚫기 위해 풍력 발전소 건설을 용인해야 하는 기묘한 전략적 공생 관계에 놓이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교착 상태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충과 제조업 리쇼어링으로 인한 미국의 급격한 전력 수요 대응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에너지 로비스트는 사석에서 "대통령의 풍력 혐오가 전략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며 당혹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