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유럽 최대 경제국이자 중국을 상대로 무역 적자를 키우고 있는 독일은 중국 측에 협력 강화를 제안하며, 우크라이나 종전을 위한 노력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 중국은 미국발 불확실성을 강조하며 다자주의와 자유무역 체제를 수호하자고 촉구했다.
중국 관영 중앙TV(CCTV)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메르츠 총리는 25일 오전 베이징에 도착해 1박2일 방중 일정을 시작했다. 메르츠 총리 방중엔 메르세데스 벤츠, BMW, 폭스바겐, 지멘스, 아디다스 등 주요 분야 기업 대표 약 30명으로 꾸려진 경제사절단이 동행했다. 이번 방문은 연초부터 이어진 유럽 지도자들의 방중 직후, 내달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이뤄졌다.
메르츠 총리와 시 주석은 이날 오후 5시30분(현지시각)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만나 만찬을 겸한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메르츠 총리는 인사말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고히 준수하고, 중국과 함께 우호 전통을 계승하고 상호 존중과 개방적 협력을 견지하며, 양국의 전면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지속적으로 심화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 기업계는 중국 시장을 매우 중시하고 있으며, 대중(對中) 협력을 더욱 강화해 상호 호혜와 공동 발전을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메르츠 총리는 또 "유럽연합(EU)과 중국이 신뢰 가능하고 지속적인 경제·무역 협력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쌍방의 이익에 부합하고, 세계의 안정과 번영에도 도움이 된다"며 "독일은 유럽과 중국의 대화와 협력 강화를 지지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언급됐다. 메르츠 총리는 시 주석에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노력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고, 시 주석은 중국의 원칙적 입장을 설명하며 "핵심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당사자가 평등하게 참여하도록 보장하고, 평화의 기반을 다지며, 각자의 합리적 관심사를 충분히 배려하고, 평화 의지를 강화해 공동의 안보를 실현하고 지속 가능한 평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 中 의존 줄이려는 獨… 中 "우린 美보다 예측 가능, 협력 늘리자"
독일은 유럽 최대 경제국이자 중국의 유럽 최대 무역 파트너로, 독일과 중국 간의 협력은 유럽연합(EU)과 중국 관계의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독일의 지난해 최대 교역국은 미국이 아닌 중국이었으며, 같은 해 대(對)중국 투자 규모는 4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미·중 관세전쟁으로 중국이 희토류 등 공급망을 틀어쥘 때마다 독일의 제조업체들은 생산 지연을 호소했다. 중국 제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자국 제조업이 흔들리는 '차이나 쇼크'를 겪은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에 독일은 중국 의존을 낮추는 디리스킹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또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중국의 투자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AP통신은 "유럽 지도자들은 중국 기업들이 자국에 생산시설을 건설하길 바라고 있다"며 "전기차와 태양광 패널 등 분야에서 가격 하락을 초래하는 중국의 과잉 생산을 해결하고, 유럽 기업들이 중국에서 직면하는 무역 장벽이 제거되길 원한다"고 했다.
반면 중국은 양국이 경제적으로 뗄 수 없는 관계임을 강조하며 디리스킹의 필요성을 반박하고 있다. 관영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에서 "최근 몇년 간 디리스킹 등 담론이 독일의 대중 정책에 영향을 미쳤지만, 양국 경제관계는 강한 내생적 동력을 지니고 있다"며 "독일 학자들도 디리스킹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하며 양국이 주요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발 불확실성 속에서 '더 예측 가능한' 중국과 협력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메르츠 총리는 26일 베이징 메르세데스 벤츠 공장을 방문한 뒤 중국 첨단 기술 산업의 중심지인 항저우로 이동해 중국 대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업체 유니트리(Unitree·宇树科技)와 독일 지멘스 운영시설을 시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