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 관세를 위법하다고 판결하면서, 앞서 합의를 체결한 아시아 국가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22일(현지 시각) 미 뉴욕타임스(NYT)는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각국을 조명, 대법원의 상호 관세 무효 판결로 이들이 재협상과 합의 유지 사이 딜레마에 봉착했다고 보도했다. 판결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각국에 15%의 신규 관세를 부과했으며, "향후 몇 달 내로 새롭고 법적으로 허용되는 관세를 결정하겠다"며 불확실성을 시사했다.
세계 제조업 중심지인 아시아의 국가들은 자국의 수출 의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과의 합의를 서둘러 왔다.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주력 산업에 적용되는 관세율을 낮추는 대신, 미국산 제품에 대한 자국 관세를 인하하고 대규모 대미(對美) 투자 및 미국산 제품 구매를 약속한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국가는 국내 정치적 반발에 직면, 주권 침해 논란에 시달리는 등 내홍을 겪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아시아 국가들이 섣불리 합의를 체결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정학 컨설팅 기업 APAC어드바이저스의 스티븐 오쿤 최고경영자(CEO)는 "15% 이상 관세에 합의한 국가는 현재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재협상을 시도할지, 보복 가능성을 감안해 합의를 유지할지 기로에 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다수 국가는 관세율 19%에 합의하면서 협상 구조상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예컨대 인도네시아는 판결 전날인 19일 상호 관세율을 32%에서 19%로 조정하는 협정에 서명했는데, 이를 대가로 미국산 상품 대부분을 무관세로 수입하고 자국 경제 핵심 부문을 미국에 개방하는 파격적 합의를 마쳤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합의를 끝내지 않은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선택지를 보유한 셈이 됐다. 일례로 인도는 앞서 관세를 18% 선으로 낮추는 데 합의했으나, 최종 합의를 앞두고 이번 주 미국과 진행하려던 협상을 전격 연기하며 시간 벌기에 나섰다. 베트남 또한 관세를 기존 46%에서 20% 선으로 낮추는 기본 합의에 도달했으나, 여섯 차례 협상에도 최종 타결은 지연됐던 만큼 숨 고를 틈이 생겼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정상회담을 앞둔 중국 또한 명백한 수혜국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시진핑 국가주석은 미국과의 관세 전쟁 상황에서도 무역 흑자 1조달러를 경신, 경제성장률 5.0%로 목표를 달성하며 유리한 입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실적이 필요한 상황으로, 핵심 압박 수단인 관세까지 흔들리면서 양보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복원을 시사하면서 불확실성은 당분간 걷히지 않을 전망이다. 미 대법원이 위법으로 판결한 것은 IEEPA에 근거한 관세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롭게 선포한 '글로벌 관세 15%'와 USTR 무역 조사 등은 무역법 122조와 301조 등에 의거해 효력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재협상을 요구하는 국가들이 되레 품목별 관세 등으로 역풍에 휘말릴 수 있는 이유다.
이에 각국은 미국의 행보를 주시하면서도 당분간 자극을 최소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미국 대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투자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 행정원 또한 "초기 판단으로는 대만에 미치는 충격과 영향이 제한적"이라며 "상황을 지속적으로 면밀히 주시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