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며 가상자산 시장에 다시 한 번 냉기가 퍼지고 있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인 비트코인은 지난해 10월 고점 대비 약 44% 하락하며 6만3000달러 선 아래로 떨어졌다. 16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변동성이 큰 가상자산 시장 특성상 가격 급락 자체는 낯설지 않지만, 이번 하락은 시장 환경과 어긋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남성이 비트코인 로고가 표시된 화면 앞에서 하락세를 나타내는 시세 그래프가 담긴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5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은 지정학적 긴장과 정책 불확실성으로 위험 회피 심리가 강해졌다. 중동 정세 불안, 무역 갈등 확대, 기술 산업 전반의 조정이 겹치며 주식시장의 변동성 지표도 상승했다. 이런 환경은 통상 안전자산 수요를 자극한다. 실제로 금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온스당 5500달러를 넘어섰다.

반면 비트코인은 정반대의 흐름을 보였다. 가상자산 업계는 그동안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으로 규정해 왔다. 위기 국면에서 가치 저장 수단 역할을 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번 조정 국면에서 비트코인은 안전자산이 아니라 위험자산처럼 움직였다. 금 가격이 오르는 동안 비트코인은 추가 하락했고, 두 자산 간 괴리는 오히려 확대됐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디지털 금' 서사 자체가 흔들렸다고 평가한다. 시장 불안이 커질수록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을 매수하기보다 현금화 대상으로 인식했다. 위험 회피 국면에서 가장 먼저 정리되는 자산 중 하나가 됐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일부 헤지펀드 투자자들은 가상자산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금과 은 투자분까지 매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적 기대도 약화됐다. 가상자산 시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친(親)가상자산 기조에 힘입어 지난해 급등했다. 트럼프는 규제 완화와 산업 육성을 공언했고, 이른바 '트럼프 효과'가 비트코인 가격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최근 비트코인 가격은 트럼프 당선 직전 수준보다도 낮아졌다. 정책 기대가 실질적인 수요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의미다.

기관 투자 흐름 역시 둔화됐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는 출시 초기 기대만큼의 자금 유입을 끌어내지 못했고, 최근 몇 달간 거래량도 감소했다. 기관 수요가 약해지자 개인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는 더 빠르게 확산됐다. 여기에 미국 재무부가 가상자산 시장 안정에 직접 개입할 권한이 없다는 점을 재확인하면서 정책적 '안전판'에 대한 기대도 사라졌다.

가상자산 기업들의 실적과 주가도 직격탄을 맞았다. 주요 거래소들은 인력 감축과 사업 축소에 나섰고, 대규모 비트코인을 보유한 상장 기업들의 손실 규모도 확대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정이 2022년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붕괴 이후 가장 심각한 침체 중 하나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이번 하락이 가상자산 시장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비트코인은 과거에도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 마운트곡스 해킹, 가상자산발행(ICO) 붕괴, 대형 거래소 파산 등으로 급락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반등했다. 문제는 이번 조정이 비트코인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이 여전히 기술주와 유사한 고위험 자산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안전자산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변동성 축소와 신뢰 회복이 필요하지만, 현재 시장은 다시 한 번 침체 국면에 들어섰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