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다 핵무기 보유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마지막 핵 군축 협정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이 연장되지 못하고 5일(현지 시각) 만료됐다.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 핵무기 수를 제한해 온 유일한 조약이 사라지면서 핵 경쟁과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협정 만료 시점인 미 동부 시각 4일 자정(한국 시각 5일 오후 2시)까지 러시아가 제안한 뉴스타트 1년 연장을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은 5일 브리핑에서 "오늘이 지나면 효력이 중단될 것"이라며 뉴스타트가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0시에 만료된다고 밝혔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조약을 1년간 자체 연장할 것을 제안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답을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달렸다"면서도 "어떤 경우든 러시아는 핵무기 분야에서 전략적 안정 문제에 대해 책임 있고 신중한 접근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핵무기 통제에 대한 향후 방향을 정하고 정해진 일정에 따라 이를 명확히 밝힐 것이라고 이날 블룸버그 통신에 밝혔다.
뉴스타트는 1969년 미국과 당시 소련이 시작한 핵군축 협상의 첫 결과물인 1972년 전략무기 제한협정1(SALT1)이 타결된 후 명맥을 이어온 마지막 핵군축 조약이다. 2011년 2월 5일 발효됐다. 기존 협정 시한은 10년이었지만 양국이 지난 2021년 2월 5년 연장에 합의하며 2026년 2월 4일까지 효력이 발생하게 돼 있었다.
국제사회는 두 강대국의 약속이 모두 사라진 데 깊은 우려를 표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에서 "뉴스타트 조약 만료는 국제 평화와 안보에 있어 중대한 순간"이라면서 "반세기 넘게 지나 처음으로 우리는 러시아와 미국의 전략 핵무기에 대한 어떠한 구속력 있는 제한도 없는 세계에 직면하게 됐다"고 밝혔다.
뉴스타트는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양국 간 불신이 커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3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책임이 서방에 있다고 주장하며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했고, 이에 당시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정보 공유와 핵시설 사찰 허용 등을 중단했다. 다만 러시아는 참여 중단을 선언한 이후에도 조약의 핵심인 핵무기 숫자 제한은 지키겠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핵탄두 숫자에 대한 검증을 허용하지 않아 준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작년 1월 의회에 제출한 연례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조약 위반이 현재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을 위협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스타트 만료 후 새로운 핵 군축 합의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뉴욕타임스에 뉴스타트와 관련해 "만료되면 만료되는 것이고 더 나은 합의를 할 것"이라며 "선수 두엇이 더 관여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등 다른 핵보유국까지 아우르는 핵 군축 합의를 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지점이다.
중국은 2024년에 핵탄두 약 600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1000기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 정부는 자국을 포함한 핵 군축 협상 가능성에 대해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5일 브리핑에서 "중국의 핵 전력은 미·러와는 전혀 같은 차원에 있지 않다"며 "현 단계에서는 핵 군축 협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러시아는 핵 군축 대화를 확대하면 미국의 동맹인 영국과 프랑스도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