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과 형사 수사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미국 재계는 공개적으로 파월 의장을 옹호하지 않고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선진국 경제의 핵심 원칙으로 여겨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침묵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13일(현지 시각) CNN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최근 연방 검찰이 자신과 연준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히며 "이는 연준 본부 리모델링 비용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금리 인하 요구에 따르지 않은 데 따른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연준이 특정 정치인의 선호가 아니라 공익에 기반해 금리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일시적인 변동만 보였고, 기업 경영진들 역시 별다른 공개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미국 재계가 침묵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과의 정면 충돌이 불러올 보복 위험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에도 자신의 정책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 기업을 공개적으로 압박해 왔다. 2018년 할리데이비슨이 유럽연합의 보복 관세를 피하기 위해 일부 생산 시설을 해외로 이전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이며 불매를 촉구했다. 이 여파로 기업은 경영난에 시달렸고 결국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됐다. 이 사례는 재계 전반에 강한 경고 신호로 작용했다.
여기에 집단행동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예일대 CEO 리더십 연구소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한 CEO 200명 중 71%는 '트럼프 행정부가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했다'고 인식했고, 80%는 '파월 의장에 대한 금리 인하 압박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비공개적인 우려에 그쳤다. 미국 최대 기업 CEO 단체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조차 관련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개별 기업이 홀로 목소리를 낼 경우 감당해야 할 정치적 비용이 크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지막 이유는 저금리에 대한 시장의 유혹이었다. 연준의 독립성이 훼손될 경우 장기적으로 금융 불안이 커질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금리 인하 기대가 주가 상승과 자금 조달 여건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부 기업과 투자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일시적인 정치적 소음으로 간주했고, 결국 시장은 이를 흡수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른바 '타코 트레이드'처럼 소동이 지나간 뒤 조정 국면에서 저가 매수 기회를 노리는 전략도 확산됐다. 타코 트레이드는 트럼프 대통령이 위협적인 발언을 던진 뒤 결국 물러선다는 전제에 베팅하는 투자 전략을 말한다.
보다 냉소적인 해석도 제기됐다. 기업 경영진이 국가의 장기적 안정성보다 단기 주가와 자금 조달 환경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에라스무스 커스팅 빌라노바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경제 지표가 연준의 금리 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였지만, 이제는 대통령의 선호가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