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관련 주식의 급등으로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다만 이번 랠리가 기술 혁신에 따른 합리적 재평가인지, 과거 거품 국면과 닮은 투기적 과열인지를 두고 논쟁이 커지고 있다. 일부 지표는 1929년 월가 대폭락이나 1999년 닷컴 버블 직전과 비교될 정도로 과열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올해 4월 저점 대비 두 배 이상 급증하며 한때 5조 달러를 돌파하자 중앙은행 관계자들과 일부 투자자들은 AI 랠리가 금융 안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로고와 인공지능(AI). /로이터=연합뉴스

30일(현지 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데이터 분석업체 피네온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경기순환을 반영한 기준으로 계산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의 10년 주가수익비율(PER)은 1929년 대공황 직전보다 높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수준도 웃돌았다. 1840년대 이후 장기 데이터를 기준으로 보면 현재보다 주식시장이 더 과대평가됐던 시기는 닷컴 버블 당시가 유일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일부 투자자들은 현재의 주가 수준이 AI가 가져올 생산성 혁신 가능성을 반영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AI 도입이 기업 수익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는 기대가 주가에 선반영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생산성 개선 효과를 둘러싼 전망은 크게 엇갈렸다. 영국 예산책임청은 AI가 전 세계 생산성을 끌어올릴 잠재력을 지닌 기술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실제 효과는 매우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AI가 연간 생산성 증가율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는지를 분석한 연구 결과 역시 편차가 컸다. 관련 연구들은 생산성 증가폭을 연 0.1%포인트에서 최대 3.4%포인트까지 제시했다. 이는 미미한 개선에 그칠 가능성과 기존 성장률을 두 배 이상 끌어올릴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함을 의미했다.

또 다른 우려 요인으로는 주식시장 내 기술주 집중도가 급격히 높아졌다는 점이 지적됐다. 아마존,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오라클 등 이른바 초대형 빅테크 5개 기업이 S&P500 시가총액의 약 19%를 차지했다. 여기에 AI 칩 공급을 사실상 장악한 엔비디아와 브로드컴을 더하면 비중은 30%에 육박했다. 시장 전체가 소수 기업 실적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AI 상용화 기대가 본격화된 2022년 10월 이후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S&P500 시가총액 비율은 142%에서 214%로 급등했다. 같은 기간 기술주의 비중은 44%에서 101%로 두 배 이상 확대됐다. 경제 성장 구조 역시 기술 부문 의존도가 높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등 정보 처리 장비에 대한 기업 투자가 올해 상반기 미국 GDP 성장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투자운용사 GMO의 벤 인커 매니저는 "AI에 대한 기대가 흔들릴 경우 시장 전반에 심각한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현재 AI 투자 논리가 상당 부분 신념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 신념이 언젠가는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역사적 비교가 반드시 거품 붕괴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닷컴 버블 당시에는 시장 집중도가 지금보다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장기 침체가 발생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반대로 19세기 영국 철도 붐 시기에는 투자와 기업 가치가 지금보다 훨씬 집중됐지만, 철도는 결국 경제 구조 자체를 바꾸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가레스 캠벨 퀸즈대 경제사학자는 "철도 붐은 단순한 투기 대상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동 방식 전체를 바꾼 기술이었다"면서 "당시 수많은 철도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주가가 폭락했지만, 철도 산업 자체는 장기적으로 경제의 중심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AI 역시 단기 조정 가능성은 있지만, 기술의 근본적 영향력 측면에서는 철도와 유사한 경로를 밟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