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159명이 발생한 초대형 아파트 화재 이후 홍콩 당국이 여론 통제에 주력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선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시민 감시 체제가 고착화된 홍콩의 민낯이 이번 참사로 또 한 번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4일 중국 관영 영문 매체 차이나데일리 등에 따르면, 지난 2일 홍콩 보안국은 캐나다 기반 '홍콩 의회'와 대만 기반 '홍콩 민주화 독립 연맹'의 홍콩 내 운영을 금지했다고 전했다. 보안국 대변인은 "이들은 즉시 '금지 단체'로 지정됐으며, 이들 단체의 모든 활동에 참여하거나 연루되는 것을 피하라"고 강조한 상태다.
앞서 지난달 26일 홍콩 타이포구 고층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Wang Fuk Court)'에서 발발한 화재 참사로 시민들이 애도를 표하는 가운데, 홍콩 당국은 '반체제 행위'를 솎아내는 데 집중하는 모양새다. 이전에도 홍콩 전직 구의원과 자원봉사자 1명이 정치적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는가 하면,법조인·정책 전문가 등등 시민 주도로 추진된 기자회견이 주최 측의 경찰 조사로 전격 취소된 바 있다. 관영 매체들 또한 일부 시민 활동이 정치적 목적과 연계될 수 있다는 경고성 보도를 내보내며 당국의 경계 기조를 뒷받침하는 양상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정부가 1989년 6월 톈안먼 민주화 항쟁 이후 집단적 애도가 정치 행위로 비화할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해 왔다고 분석했다. 이에 당국은 재난 직후 48~72시간을 여론 통제의 골든 타임으로 관리해 왔으며, 앞서 ▲2008년 쓰촨 대지진 ▲2015년 톈진항 폭발 ▲2022년 코로나19 봉쇄 중 아파트 화재 당시에도 유사한 상황이 연출됐다는 것이다.
민신페이 클레어몬트 맥케나 칼리지 정치학 교수는 "중국 공산당은 톈안먼 사태 이후 '상황이 악화될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며 "사건이 발생하면 (정부는) 최대한 빨리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일한 양상은 사실상 중국의 수하에 놓인 홍콩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홍콩 또한 범죄를 저지른 홍콩 시민을 중국으로 송환할 수 있는 '범죄인인도법(송환법)'에 반하는 시위가 2019년 발생, 이 시위가 민주화 시위로 번진 바 있다. 다음 해 홍콩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결정적 이유다.
이번 화재는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에서 발생한 첫 대형 참사인 만큼 시민사회가 얼마나 위축됐는지 가늠할 시금석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NYT는 홍콩 당국이 베이징식 통제 시스템을 완전히 체화한 한편, 시민들은 여전히 소셜미디어(SNS)와 현장에서 애도를 표하며 구조·진상 규명에 힘쓰는 등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에 관한 의회 국제동맹(IPAC)의 충칭퀑 수석 애널리스트는 "중국과 홍콩 당국은 시민들이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 및 공유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며 "그러나 이번 참사로 홍콩 시민들은 (정부에) 길들여지지 않았으며, 언제든 결집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