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가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대규모 추방작전을 위한 핵심 기술 제공자로 부상했다. 3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팔란티어의 소프트웨어 '이민 라이프사이클 운영 시스템'이 불법 체류자 추적·식별·추방 절차 전반에 투입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강화한 대량 추방 기조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팔란티어는 과거 ICE 강제추방 부서와의 협력을 거부해온 기업이었다. 팔란티어의 공동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알렉스 카프는 오랜 민주당원이며, 회사 역시 '진보적 가치'와 시민 자유를 강조해왔다. 카프는 10여 년 전 트럼프의 추방 정책을 "말도 안 된다"고 비판했고, 팔란티어는 ICE 중에서도 성매매·마약·테러 수사를 담당하는 국토안보부 조사부서와의 계약만 유지하며 추방작전 직접 관여를 피해왔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카프와 회사는 올해 들어 입장을 완전히 바꿨고, ICE의 대량 추방 인프라 구축에 적극 참여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팔란티어는 지난 4월 ICE와 3000만달러(약 420억원) 규모 계약을 체결해 이민 소프트웨어 구축을 시작했고, 9월에는 총 계약 규모를 6000만달러로 확대했다. ICE 조달 문서에는 이 시스템이 "불법 체류 외국인의 신속한 선별·체포·추방을 위한 프로세스 자동화"를 목표로 하며 체류 기록·국경 접촉·망명 신청·복지 신청 등 방대한 데이터를 통합해 거의 실시간으로 사람들을 식별·분류하는 기능을 한다고 적혀 있다. ICE는 계약서에서 팔란티어가 "지체 없이 필요한 역량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카프의 사상적 변화도 눈길을 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이민 문제에 대한 진정한 진보적 입장은 극단적 회의주의"라고 주장하며 "유럽의 무제한적 이민이 노동계급의 임금을 떨어뜨리고 사회적 혼란을 초래했다"고 했다. 카프는 자신이 여전히 경제적 진보주의자라고 강조하면서도 "미국의 진보 정치가 국경 통제를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카프가 지난 2023년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공화당 국가안보 강경파와 가까워지며 이민 문제 인식이 급격히 변화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팔란티어 내부에서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일부 직원들은 이민 소프트웨어가 사법적 통제 장치를 약화시키고 시민 자유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으며, 실제로 ICE 업무 확대를 이유로 올해 사직한 직원도 있었다. 폴 그레이엄 구글 공동창업자 등 기술계 인사들은 팔란티어가 "경찰국가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팔란티어 전직 직원 13명은 공개 서한에서 회사가 "미국의 권위주의 정상화에 공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팔란티어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경 통제 강화 흐름이 기업의 전략 변화에 영향을 줬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ICE는 올해 들어 시카고·샬럿 등 도시에서 "최악 중 최악"이라는 명목으로 광범위한 체포 작전을 확대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추수감사절 연설에서 불법 이민의 전면 중단 방침을 재확인했다. 팔란티어는 내부 자료에서 "국가적 논의가 범죄·국경 통제로 이동하면서 기존 업무 범위만으로는 정부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편 팔란티어는 직원 행동 강령도 개정했다. 이전 규범에 포함됐던 '인종·출신 기반 불공정 행위 금지'와 '무의식적 편향 인식' 조항을 삭제하고, 보다 포괄적·법률 중심 문구로 대체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변화가 트럼프 행정부의 다양성 규범 금지 행정명령의 영향으로 보인다고 했다.
ICE 추방 작전에 팔란티어 기술이 투입돼 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술 기업의 정부 협력 범위와 이민 집행 과정의 투명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대해 팔란티어는 "정책을 정하는 기관이 아니라 법에 따라 계약을 이행하는 기업"이라며 논란을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