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1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닥친 가운데, 이란 정부가 수도 테헤란 거주민 1500만명을 대피하는 카드까지 고려할 만큼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수도 테헤란에서는 8일부터 물 공급이 끊겼고, 제2도시 마슈하드도 주요 댐 저수량이 3% 밑으로 떨어졌다. 외신들은 이란 정부가 '물 파산(water bankruptcy)' 상태에 놓였다고 전했다.
10일(현지시각)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최악의 경우 테헤란 주민 1500만명이 도시를 떠나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테헤란에는 정말 물이 남아있지 않다"며 "지금 당장 긴급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곧 어떤 해결책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것"이라고 밝혔다.
높은 내륙 분지 혹은 험준한 산악 지형이 즐비한 이란은 수십 년간 고질적인 물 부족 문제를 겪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단순한 가뭄을 넘어 재앙 수준이다. 올가을 테헤란에는 100년 만에 처음으로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이란 기상 당국은 앞으로 10일간 의미 있는 강우 예보가 없다고 밝혔다.
거주 인구 1000만명이 넘는 거대 도시 테헤란은 제한 급수나 야간 단수 같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물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수도권 주요 수원인 카라지 댐 저수량은 8% 미만이다. 테헤란 인근에서 식수를 공급하는 5개 주요 댐 저수량은 뉴욕타임스(NYT) 보도 기준 5%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反) 이란 성향 매체 리얼클리어월드(RCW)는 현지 전문가를 인용해 테헤란 댐 저수량이 14%이며, 가장 중요한 댐으로 꼽히는 라르 댐은 1%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중동 지역에서는 모래 등 불순물이 많아 댐 저수량이 한자리 수준으로 떨어지면 사용이 불가능한 죽은 물(dead water) 취급을 받는다.
인구 400만명에 달하는 제2도시 마슈하드 사정은 더 심각하다. 인근 4개 댐에서 물을 공급 받지만, 총 저수량은 3% 아래로 떨어졌다. 올해 강수량은 0.4mm로, 작년 27~28mm에 비해 98.6% 줄었다. 이란 전역에서 19개 주요 댐이 사실상 고갈됐고, 40개 이상 도시는 제한적인 물 배급과 단수를 시행 중이다. 이란 일부 소셜미디어에서는 수자원을 안보화하기 위해 인근 적대 국가들이 이란 비구름을 훔쳐간다(cloud stealing)는 음모론까지 퍼지고 있다. 이란 기상 당국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일축했지만, 그만큼 민심이 흉흉하다는 방증이다.
아바스 알리아바디 이란 에너지부 장관은 BBC 인터뷰에서 현재 위기 원인이 단지 강우량 부족 때문만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올해 6월 이스라엘과 벌인 12일 전쟁이 100년 넘은 수도관 인프라 노후화와 맞물리면서 물 파산 상태에 놓였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공군은 지난 6월 15일 이란 군 지휘부가 밀집한 테헤란 북부 타즈리쉬 지역을 공습했다. 이 공격으로 테헤란 상공 방어망이 뚫렸을 뿐 아니라 주요 상수도 시설이 파괴돼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다. 당시 파괴된 시설은 지난 5개월 동안 제대로 복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물 공급망이 마비된 와중에 100년 넘은 상하수도관 누수까지 발생하면서 문제를 키웠다. 알리아바디 장관은 "노후한 수도관이 물 위기를 심화시켰다"고 말했다. 이란 정부는 현재 저수지 수량이 남은 도시에서도 수도관 붕괴를 막기 위해 자정부터 아침까지 수압을 낮춰 물을 소량만 공급하는 고육지책을 쓰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물 부족 사태가 자연재해라기보다 수십 년간 이어진 규제 없는 지하수 추출과 정치적 태만, 사적 이익에 기반한 단기 프로젝트가 낳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카베 마다니 유엔대학(UNU) 물·환경·보건 연구소장은 폭스 인터뷰에서 "이란에서 물 부족은 수십 년간 이어진 정책 실패 결과"라며 "학계에서는 이란 정부에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 수년간 경고했다"고 말했다.
이란 개혁 성향 신문들에 따르면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소유한 건설사 카탐 알-안비야(Khatam al-Anbiya)는 환경 평가도 없이 무분별하게 댐을 건설했다. IRGC는 이란의 정규군과 별도로 이슬람 신정 정권을 수호하고, 이란 국내외 안보를 담당하는 조직이다. 이란 사회 전반에 걸쳐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정부 위의 정부'로 불릴 만큼 강력한 권력을 내세운다. 최고지도자 비호를 받기 때문에 군사뿐 아니라 건설 등 경제 부문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정권과 연결된 기업들에 특혜를 주는 차원에서 이 기업들이 운영하는 산업 단지로 물을 빼돌렸다. 건설사 고위직에는 혁명수비대와 관계된 무자격 관료를 대거 임명해 지하수를 고갈시킬 만한 대형 프로젝트를 무분별하게 진행했다. 동시에 이란 정부는 막대한 재정 적자 속에서 수도 시설 개량에 자금을 투자하는 대신 레바논 헤즈볼라,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 예멘 후티 반군, 가자지구 하마스 같은 중동 무장 세력 지원과 핵 프로그램 개발에 돈을 쏟아부었다.
NYT에 따르면 테헤란 지반은 매년 300mm씩 내려앉고 있다. 무분별하게 지하수를 개발한 결과 지반 침하가 심해진 결과다. 사태가 악화하자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남부 마크란 해안으로 수도를 옮기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마크란은 오만해와 인도양에 접한 전략적 요충지다. 하지만 이전 비용만 최소 770억~1000억 달러(약 106조~138조원)에 달해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이란 정부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RCW는 마크란 지역 역시 해수면 상승과 물 부족 문제에 직면해있다고 지적했다.
알리 모리디 샤히드 압바스푸르 대학 교수는 "현재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란 중앙 고원 전체가 무인 지대(depopulated)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