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담판을 앞두고,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최첨단 AI(인공지능) 칩 대중(對中) 수출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미국 내에서 국가 안보가 위협 받을 수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8일(현지 시각) 한국행 에어포스원(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블랙웰' 칩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블랙웰에 대해 "이건 정말 엄청난(super duper) 칩'"이라며 "우리는 반도체 분야에서 다른 누구보다 약 10년은 앞서 있다"고 했다.
블랙웰은 엔비디아가 지난해 공개한 차세대 인공지능(AI) 칩으로, 대규모 언어모델(LLM) 학습 등에 사용되는 GPU(그래픽처리장치)의 핵심 기반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블랙웰 같은 고사양 AI 칩의 대중 수출을 제한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미국의 대중 수출 정책 기조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정책을 뒤집는다면 그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며 "미 정부 관리들은 이것이 '엄청난 국가안보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주중 미국대사를 지낸 니컬러스 번스 하버드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 기술 수출 정책에서 "기존 입장을 지켜야 한다"면서, "중국은 미국을 밀어내길 원하며, 그 핵심 수단으로 기술을 보고 있다. 수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라고 지적했다.
크리스 맥과이어 전 미 국가안보회의(NSC) 기술 및 국가안보 담당 부국장은 "블랙웰을 중국에 파는 것은 미국이 AI분야에서 가진 가장 큰 우위를 양보하는 것"이라며 "블랙웰은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정교한 제품이다. 이 강력한 제품을 중국에 넘기는 것은 말도 안되는 짓"이라고 말했다.
의회에서도 당파를 가리지 않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 연방 하원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회의 존 물레나(공화·미시간) 위원장은 이날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에 "적국에 최신형 첨단 AI칩을 판매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행정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민주·델라웨어)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놀라웠다"면서 "21세기의 결정적 싸움은 누가 인공지능을 지배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서 대두 주문을 끌어내기 위해 이 중요한 최첨단 AI 칩을 중국에 판매하는 것은 비극적인 실수가 될 것"이라고 CNN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AI 칩 수출 재개를 대가로 농산물 수출 확대를 추진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 미국산 대두 수입을 중단한 상태다. 이로 인해 미국의 주요 대두 생산지이자 공화당의 핵심 지지 기반인 일리노이, 아이오와, 미네소타, 네브래스카, 인디애나주 등 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NYT는 전직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보복 조치로 피해를 입은 아이오와, 캔자스 등에서 지지세가 약화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면서 "이같은 상황이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중간 선거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중국이 대두(콩)뿐만 아니라 보리, 밀, 옥수수, 견과류 등 다른 농산물도 구매하는 조기 합의에 도달하길 원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