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8개월 만에 중국을 찾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중국이 파격적으로 예우하면서 북한과 중국 간의 관계가 전격적으로 회복의 길로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 계기로 북한은 러시아에 대한 의존을 줄여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경제 의존도 95% 이상인 중국과의 교역 확대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김 위원장이 지난 2일 오후 4시(현지시각) 베이징에 도착해 4일 오후 10시에 떠나는 일정 내내 그를 국빈급으로 예우했다. 공안 당국은 김 위원장 전용열차가 도착하는 날부터 베이징역과 주중북한대사관 등 주요 동선의 통행을 강하게 통제했다. 주요 지점엔 사복 경찰이 대거 배치됐고, 시민이나 취재진이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면 신분증을 검사하며 자리를 떠날 것을 요구하고, 취재진을 미행하거나 촬영한 사진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는 등 삼엄한 경비가 이어졌다.
김 위원장이 전용열차를 타고 베이징역에 도착하자, 플랫폼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열 5위 차이치 중앙판공청 주임(시진핑 비서실장 격)과 왕이 외교부장이 김 위원장을 맞이했다. 김 위원장 방문 이튿날이자 열병식 행사날이었던 3일은 물론이고, 북·중 정상회담을 앞둔 4일 오후엔 회담장 인근 왕복 10차선 도로를 전부 통제하고, 육교마저 보행을 막았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물거나 도로 사진을 찍으면 여지 없이 공안과 군인이 다가와 통제했다.
김 위원장 방중 마지막 일정이었던 북·중 정상회담에서는 차담과 만찬을 곁들였다. 26개국 정상이 집결한 무대에서 김 위원장만을 위해 단독 만찬을 마련한 것이다. 통상 다자 외교 무대에서 특정국 정상에게 별도의 만찬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최고의 예우로 여겨진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변하지 않은 것은 우리 대표단을 중국 동지들이 극진히 환대해주는 친선의 감정"이라며 "세상이 변해도 북·중 양국 인민의 친선의 정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됐다"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변치 않는 우호 관계'를 다짐하며 앞으로의 협력 강화를 약속했다. 중국중앙(CC)TV, 신화통신 등 관영매체 역시 두 정상의 만남을 이례적으로 거의 실시간으로 전했다. 모두 발언 내용까지 동영상으로 즉시 공개하며 우호 분위기 연출에 힘을 보탰다.
앞서 양국 관계는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등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을 강화하면서 소원해졌다. 중국은 북·중·러 3국 밀착 구도가 굳어지는 것을 경계한다. '조중(북·중) 우호의 해'였던 지난해에도 양국 관계 회복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고, 오히려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이 함께 산책한 것을 기념하는 중국 다롄의 '발자국 동판'이 철거되고, 북한에서 파견된 근로자 수만 명이 중국 당국으로부터 귀국을 요구받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무려 6년 간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은 것은 북·러 밀착의 여파로 분석된다.
그러다 올해 들어 북·중 고위급 인사 교류와 근로자 파견 등이 재개되면서 관계 개선 기류가 감지됐고,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베이징을 찾으면서 두 정상이 만나게 된 것이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외교 관계를 정상급이 선도하는 경향이 매우 크다. 과거 사례를 보면 긴장감이 있다가도 정상 방문이 이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관계가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도 김정은의 방중을 통해 양국 관계가 기존보다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북·중 양국은 무엇보다 교역 분야에 협력이 강화될 전망이다. 앞서 북한은 우크라이나전 파병을 계기로 경제 역시 러시아에 기댔는데, 전쟁이 끝나고 나면 지금 같은 관계가 유지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북한은 중국과의 교역 확대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대외교역 규모는 27억달러(약 3조7633억원)로 전년(27억7000만달러·약 3조8608억원)보다 2.6% 줄었다. 특히 비료와 곡물 수입이 88%씩 감소하면서, 민생 안정을 위해서도 중국과 교역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지난 2일 발간한 '김정은의 중국 전승절 80주년 참석 의도와 파장' 보고서에서 최근 북·러 관계가 상당한 진전을 보였지만 북·중 관계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어, 북한이 러시아로 기울어진 외교 불균형을 바로잡고자 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방중에는 군사관료 대신 경제관료가 대거 동행했다.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도 경제사령탑으로 내각 총리를 맡았던 김덕훈 당 경제부장이 배석했고, 중국 측에서도 무역과 경제 분야 사령탑이 함께했다. 양국은 북·중 경제 협력과 관련해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