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시진핑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나란히 섰다. 이들은 중국이 제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을 기념해 연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했다. 북·중·러 3국 정상이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59년 마오쩌둥, 흐루쇼프, 김일성 회동 이후 66년 만이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부터)이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승리와 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을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오전 9시(현지시각) 시작된 열병식은 중국이 2019년 건국 70주년 행사 이후 6년 만에 여는 최대 규모 군사 행사다. 공식 명분은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이다. 그러나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문가를 인용해 "실제로는 미국과 서방을 겨냥한 군사력 과시와 지정학적 세력 규합 성격이 짙다"고 분석했다.

시진핑 국가주석 부부는 이날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가장 먼저 등장해 광장 북쪽 돤먼(端門) 앞에 서서 해외 정상들을 맞았다.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웃으며 다가가 두 손으로 시 주석 손을 잡고 흔들며 친밀감을 보였다. 시 주석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2025년 9월 3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항일전쟁 승리 80주년 및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에 앞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가운데)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가운데 왼쪽),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가운데 오른쪽)과 함께 걷고 있는 모습이 담긴 중계 화면. /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 18분쯤 검은색 방탄 리무진을 타고 행사장에 도착했다. 평소 즐겨 입던 인민복 대신 검은색 양복에 금색 넥타이를 맨 모습이었다. 방중 길에 동행한 딸 김주애는 입장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기념촬영에서 시 주석 부부 왼쪽에는 푸틴 대통령이, 오른쪽에는 김 위원장이 섰다. 이후 세 정상은 다른 20여 개국 정상들과 함께 톈안먼 망루에 올랐다.

이날 열병식에는 병력 1만여 명과 항공기 100여 대, 각종 미사일과 장갑차 등 최신 무기 수백 대가 동원됐다. 특히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극초음속 미사일 'DF-17', '괌 킬러'로 불리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DF-26D', 대형 무인 잠수정(XLUUV) 등 미군이 경계하는 신형 전략 무기들이 대거 공개됐다. CNN은 "중국이 세계 최대 규모 군대를 현대화하려는 시진핑 주석 노력 아래 증강된 군사력을 드러낼 것"이라고 했다.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오른쪽),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2025년 9월 3일 수요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본 제2차 세계대전 항복 8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 앞서 당 원로들과 회동하는 모습이 대형 스크린에 비춰지고 있다. /연합뉴스

탈냉전 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시진핑, 푸틴, 김정은 세 정상은 행사 내내 밀착 행보를 보이며 돈독한 관계를 과시했다. 이들은 서방 제재를 받는 대표적인 반미 국가 지도자들이다.

푸틴 대통령은 열병식 참석에 앞서 시 주석과 별도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가 "전례 없이 높은 수준"이라고 치켜세웠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이후 6년 8개월 만에 중국을 찾았다. 특히 이번 방중에는 딸 김주애를 동행했다. 김주애는 다자 정상 외교무대 데뷔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 외에도 이란, 파키스탄, 미얀마, 벨라루스 등 20여 개국 정상이 이날 열병식에 참석했다. 대부분 중국, 러시아와 가깝거나 서방과 거리를 두는 국가들이다. G7 정상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 중에서는 친러 성향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가 유일하게 참석했다. 도이체벨레(DW)는 "열병식 참석자 명단이 동·서 지정학적 분열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202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 언론인 대기실에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을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는 모습이 담긴 TV 화면. /연합뉴스

이번 열병식은 시진핑 주석이 추진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 구상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무대다. 시 주석은 열병식에 앞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소수 국가들이 만든 규칙을 다른 나라에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을 겨냥했다. 그는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새로 제시하며 미국 중심 세계 질서 대안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미국은 일단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 북·중·러 밀착을 우려하냐는 질문에 "전혀 우려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만 미군 수뇌부에서는 경계 목소리가 나온다. 케빈 슈나이더 미 태평양공군사령관은 "중국 같은 국가들이 벌이는 행사는 메시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우리는 억제되지 않을 것"이라며 "잠재적 적대 세력 시스템이 개발되고 배치됨에 따라 우리 능력을 발전시킬 방법을 계속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열병식이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이 군사력과 외교력을 총동원해 미국에 맞서는 세력 규합에 나섰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이번 퍼레이드는 중국의 지정학적 힘을 과시하며 서방을 향해 보내는 메시지"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