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입 개발자들이 과거 실리콘밸리 호황기 때와는 다른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컴퓨터 과학 학위나 코딩 교육과정 수료증만 있으면 안정적이고 높은 연봉을 받는 직업으로 직행하던 과거와는 사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수십 개, 많게는 수백 건의 이력서를 넣어도 면접 기회조차 잡기 힘든 상황이다.

'인공지능 AI'라는 글자 앞에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달린 인형을 표현한 일러스트. /로이터=연합뉴스

29일(현지 시각) CNN에 따르면 뉴저지 몬트클레어주립대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에이브러햄 루비오는 졸업 직후 20곳에 지원했지만 아직 합격 통보를 받지 못했다. 그는 "거의 매일 링크드인에 들어가 기회를 찾지만, 대부분의 회사에서 아무런 답변도 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글로벌 컨설팅기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2022년 이후 컴퓨터 과학·수학 전공 신입 졸업생의 취업률은 8% 감소했다. 미국 최대 구인 사이트 인디드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채용 공고는 같은 기간 71% 줄었다. 기술 기업들이 AI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초보 개발자들의 일자리는 줄어든 것이다.

◇초급 개발자 일자리 대체한 AI

AI는 단순 반복 코드를 대신 짜주고, 프로젝트 일부를 자동화한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는 "이미 회사 코드의 30%가 AI로 작성되고 있다"고 공개했다. 이 때문에 "주니어 엔지니어의 역할이 대체되고 있다"는 불안이 졸업생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매사추세츠 엘름스 칼리지를 졸업한 훌리오 로드리게스는 데이터 엔지니어 자리를 얻기까지 150번 넘게 지원해야 했다. 그는 "테크 일자리는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지금 취업 시장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채용이 이뤄져도 언제든 구조조정에 휘말릴 수 있다는 불안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업가치 4조달러를 돌파한 지 불과 몇 주 만에 9000명을 해고했다.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내는' 흐름은 AI로 인해 가속화되고 있다.

닉 비노쿠어는 미시간대를 나와 AI 스타트업인 스케일 AI에 입사할 예정이었지만, 메타의 대규모 투자 후 구조조정으로 채용 제안이 취소됐다. 그는 "AI 코딩 도구의 등장은 주니어 개발자에게 거대한 해일과 같다"며 "마치 AI와 경쟁하면서 내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틱톡에서도 '컴퓨터 과학 전공을 피하라'는 영상이 확산 중이다. 한 졸업생은 "급여만 보고 이 길을 택하면 후회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수백 개의 댓글이 동조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통계에 따르면 컴퓨터 과학 전공자의 실업률은 6.1%, 컴퓨터공학 전공자는 7.5%로, 영문학(4.9%)이나 공연예술(2.7%)보다도 높다. '안정적 직업'의 상징이던 이과 전공이 구직 불안의 최전선에 놓인 셈이다.

한 개발자가 컴퓨터를 이용해 코딩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연관 없음. /AFP=연합뉴스

◇AI 커리큘럼 바꿔 대응... "창의력 더 중요"

이 같은 흐름 때문에 교육계는 발 빠르게 커리큘럼을 바꾸고 있다. 워싱턴대 폴 지 앨런 컴퓨터공학과는 올가을 'AI 지원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을 신설한다. 일부 고급 수업에서는 생성형 AI 활용을 허용해 난이도를 높이고, 기초 과정은 여전히 '손으로 배우는' 훈련을 강조한다.

코딩 교육 과정도 변화 중이다. 전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지망생이 주 고객이었지만, 지금은 AI 기술을 익히려는 임원·인사 담당자까지 교육을 받으러 온다. 코딩 교육기관 제너럴 어셈블리의 한 관계자는 "모든 역할이 중단됐다는 걸 깨달았고, 이제는 모든 과정에 AI 요소를 포함한다"고 밝혔다.

기업들도 목소리를 낸다. 디팍 싱 아마존 부사장은 "컴퓨터 과학은 단순한 코딩이 아니다. 시스템을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이 핵심"이라며 "AI가 반복 작업을 맡으면서 오히려 창의력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오랜 업계 종사자인 데이비드 바라하스 역시 "AI가 엔지니어를 대체하지는 않는다. 다만 AI를 쓰는 엔지니어가, 그렇지 못한 엔지니어를 대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컴퓨터 과학 학위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다. 그러나 AI가 바꿔놓은 현실은 냉혹하다. "졸업만 하면 잘 나가는 IT 기업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AI 도구를 다루는 능력, 창의적 사고, 빠른 적응력이 새로운 필수 요건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