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심 외국인 투자자로 급부상했다. 지난 8개월간 양측의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양국 재정적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비공식 외교 채널로까지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5일(현지 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최근 미국 내 투자 행보를 확대했다. 오픈AI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는 한편, 인텔에 20억달러를 투자하고 파운드리 사업 인수까지 검토 중이다. 애리조나에는 대규모 로봇·AI 단지 건설 계획도 추진한다.
손 회장의 대규모 투자는 미국 내 일자리와 자본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워싱턴에서 환영받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나 철강처럼 정치적·전략적으로 민감한 산업에 대해 외국 자본보다 미국 정부의 직접적인 결정권을 강조할 경우다. 이 경우 손 회장은 트럼프와의 밀착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한 투자 행보가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과거 일본제철이 미국 철강업체 US스틸을 인수하려 했을 때, 조 바이든 행정부는 철강 산업을 국가 안보와 직결된 전략 자산으로 보고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트럼프 정부는 인수 자체를 허용하되, 정부가 '황금주(golden share)'를 확보하는 조건을 붙였다. 이는 특정 의사결정에 대해 미국 정부가 최종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로, 외국 기업이 소유권을 갖더라도 통제권은 미국 정부가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손 회장은 이러한 기류 속에서 트럼프와 밀착하며 입지를 넓혔다. 백악관 방문과 골프 라운드, 대규모 투자 발표를 통해 신뢰를 쌓았다. 2016년 트럼프 타워에서 500억달러 투자 계획을 밝힌 데 이어, 트럼프 재선 후 1000억달러 추가 투자를 약속했다. 오픈AI의 샘 알트먼,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과 함께 5000억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도 공동 추진했다.
분석가들은 손 회장이 미국 정치권 핵심과 가까이 있어야 AI 인프라 구축과 글로벌 확장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리서치 업체 MST파이낸셜은 "손 회장의 전략은 원래부터 미국 반도체와 AI 투자 확대에 맞춰져 있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과거 실패 경험도 있다. 2021년 바이든 행정부는 소프트뱅크 산하 반도체 업체 암(Arm)의 엔비디아 인수를 국가 안보 이유로 저지했다. 그럼에도 올해 들어 Arm의 성과와 오픈AI 투자 기대감에 힘입어 소프트뱅크 주가는 60% 이상 급등했다.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Arm 등 굵직한 투자 성과도 여전히 손 회장의 '승부사' 이미지를 지탱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투자자들은 소프트뱅크 순자산 가치에 여전히 약 40% 할인율을 적용하며 불확실성을 반영하고 있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자금 조달,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 간 협상 등 불투명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일본 외교가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도쿄 외교 소식통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손 회장이 일본 정부 대신 미국 최고위층의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고 있다"며 "관계가 특정 개인에 과도하게 집중된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또 미야케 구니히코 리츠메이칸대 교수는 "손정의가 트럼프와 가깝지 않으면 쓸모가 없지만, 너무 가까우면 또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동안에는 양측 모두 윈윈이 가능하지만, 균형이 깨질 경우 손 회장의 투자 제국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