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정보기관이 자국 내 안보 위협 수위가 최근 가장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특히 중국이 배후에서 가장 활발하게 내정간섭과 간첩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지목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악화한 안보 환경에 대응해 2조원대 규모 군사 장비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뉴질랜드 안보정보국(SIS)은 21일(현지시각) 공개한 '2025 국가 안보 위협 환경 평가' 보고서에서 "뉴질랜드가 최근 수년간 가장 어려운 안보 환경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해외 국가 정보기관이 탐지되지 않은 채 뉴질랜드 국익에 해를 끼치는 간첩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평가했다.
SIS는 여러 국가가 뉴질랜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시도하지만, 그중 중국이 단연 "가장 적극적"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이 강대국 간 경쟁 무대가 됐고, 중국은 이 지역에서 "특히 독단적이고 강력한 행위자"라고 분석했다. SIS는 "중국이 뉴질랜드 국익을 겨냥한 정보 활동을 수행할 의지와 역량을 모두 보여줬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중국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통일전선부)를 내정간섭 핵심 기구로 지목했다. 통일전선부는 해외 영향력 공작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SIS는 통일전선부 활동이 "일상적으로 기만적이고, 강압적이며, 부패했다"고 규정했다. 이들은 지역 사회 단체나 유력 인사를 포섭해 대리인으로 내세우고, 정부와 의회, 언론, 학계 등에 침투해 뉴질랜드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시도한다고 SIS는 설명했다. 특히 중국계 이민 사회를 압박해 비판 목소리를 억누르는 '초국가적 탄압'도 자행한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또 다른 핵심 위협으로 폭력적 극단주의를 꼽았다. 온라인을 통해 급진화한 '외로운 늑대(단독 행위자)'가 예고 없이 테러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가장 큰 시나리오로 제시됐다. SIS는 특히 10대와 20대 초반 젊은 층이 온라인에서 극단주의 사상에 쉽게 빠져드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우려했다.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유해한 선전물이 더 정교해지고 빠르게 확산하는 점도 위험 요인으로 분석됐다.
주뉴질랜드 중국 대사관은 즉각 성명을 내고 보고서 내용을 정면 반박했다. 대사관은 "보고서 내용은 근거 없는 추측과 사실 왜곡, 중국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으로 가득 차 있다"며 "이념적 편견과 냉전적 사고방식이 스며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부당한 공격에 맞서 합법적인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보고서를 두고 뉴질랜드 내 중국계 사회에서는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계 지도자들은 정보기관 경고를 환영하면서도, 이번 일로 중국계 전체가 부당한 낙인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앤 마리 브래디 캔터베리대 교수는 현지 매체 RNZ 인터뷰에서 "정부가 안보 정보를 대중과 공유하는 것은 긍정적"이라며 "정보를 가진 사회는 회복력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뉴질랜드 정부는 이날 총 27억 뉴질랜드달러(약 2조2000억원)를 투입하는 군사 장비 도입 계획을 밝혔다. 노후한 해군 헬기와 공군 수송기를 교체하는 사업이다. 미국 록히드마틴 MH-60R 시호크 헬기 5대와 에어버스 A321 항공기 2대를 구매한다. 윈스턴 피터스 외교부 장관은 "급격한 안보 환경 악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앤드루 햄프턴 SIS 국장은 "우리의 위협 환경은 악화하고 있으며 이는 안전과 안보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을 향해 "만약 중국이 우리가 이런 활동을 지적하는 것을 멈추길 바란다면, 그들이 먼저 그 활동을 멈추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