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스타트업 자체를 인수하는 대신 창업자와 핵심 연구진만 빼내는 방식으로 인공지능(AI) 분야 인재를 확보하고 있다. 이를 두고 당장은 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실리콘밸리의 혁신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로이터통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은 유망 스타트업의 핵심 인력을 흡수하는 이른바 '역인수합병(reverse acquire)'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기존에 빅테크들은 유망 스타트업을 통으로 인수해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해왔다. 2005년 구글의 안드로이드 인수, 2015년 아마존의 이스라엘 반도체 스타트업 안나푸르나랩스 인수 건이 대표적 사례에 해당한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기업들은 창업자와 일부 연구진만 스카우트하거나 거액의 기술 사용권 계약을 통해 핵심 자산만 수용하고 있다. 예컨대 MS는 지난해 생성형 AI 개발업체인 인플렉션AI의 최고경영자(CEO) 무스타파 술레이만을 영입, 대화형 AI인 코파일럿 사업 관리를 위임하면서 6억5000만달러(약 8993억원)의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했다.

메타는 AI 개발 조직인 '슈퍼인텔리전스랩(초지능연구소)'을 신설하면서 세계 AI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한편, 데이터 라벨링 스타트업인 스케일AI의 지분 49%를 사들이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방식은 빅테크 입장에서 합리적인 대처로 풀이된다. 거대 인수합병에 따른 복잡한 통합 과정을 생략하는 동시에 당국의 반독점 규제를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시시각각 기술 주도권이 뒤바뀌는 상황에서 기업은 신속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스타트업의 유망 인재들 역시 대규모 연봉 인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다만 그림자 또한 짙다. 일부 인력이 프로 운동선수급 연봉을 받고 이직하면서 투자자들은 기대 이하의 수익성을 거두게 되는가하면, 고용시장은 양극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빅테크 기업들은 대체 가능 인력이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2월 메타는 전체 인력의 약 5%인 3600명을 해고 조치했으며 MS도 지난 5월 약 6000명 감원에 나섰다. 스케일AI 역시 메타 측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직후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바 있다.

이러한 변화를 두고 실리콘밸리의 근본 정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망 인재들이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대신 안정적인 빅테크 입사를 선호하게 되면서 모험형 인재 풀이 좁아지고, 장기적으로는 혁신의 원천이 말라붙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성공하면 모두가 이익을 나눈다"는 신뢰가 무너지면서 직원들이 단기적 성과에 매몰되고 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벤처캐피털 데시벨의 창립자 존 사코다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인재들이 뛰어들었던 저변에는 '성공하면 함께 보상받는다'는 실리콘밸리의 믿음이 존재했다"며 "빅테크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