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조기 총선 1차 투표 결과 발표 이후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동거 정부)’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 참패 이후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던 마크롱 대통령의 입지가 위태로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로이터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지난 30일 치러진 조기 총신 1차 투표에서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은 33.2%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좌파 연합인 국민전선(NFP·28.5%)과 마크롱의 집권 여당 르네상스를 비롯한 범여권(22.5%)을 앞질렀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1차 최종 득표율을 기준으로 극우 세력이 전체 577석 가운데 240~270석, NFP는 180~200석, 범여권은 60~90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2년 전 총선에서는 세 진영이 각각 89석, 131석, 245석을 얻었었다. 2년 만에 마크롱 진영은 4분의 1로 줄어들고 극우 세력은 몸집을 3배 늘리게 된 셈이다.

1차 투표 참여율은 66.7%로 기록됐다. 지난 2022년 총선의 1차 투표율(47.5%)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1997년 투표 이래로 1차 투표 기준 가장 높은 투표율이기도 하다. 이날 당선자를 내지 못한 지역구에서는 오는 7일 2차 투표가 치러진다. 1차에서 당선이 확정되려면 지역구별로 당일 총투표수의 50% 이상, 등록 유권자 수의 25% 이상 득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당선자가 나오지 않은 경우에는 등록 유권자 수의 12.5% 이상 득표한 후보들이 2차 투표에 진출하고, 2차 투표에서는 최다 득표자가 당선된다. 지역구 577곳 가운데 1차에서 당선자가 확정된 곳은 100곳에 불과하다.

오는 7일 2차 투표 이후 최종 결과가 나오면 마크롱 대통령은 총리를 임명하게 된다. 현재의 기세대로라면 극우 RN이 1당을 차지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프랑스에서는 27년 만에 역대 4번째 ‘동거 정부’가 탄생한다. 총리 임명이 대통령 권한이더라도 내각 불신임권을 가진 의회 다수당이 반대하는 총리를 임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통상 총리는 다수당 대표가 차지한다. 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가 총리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의미다.

마크롱 대통령의 조기 총선 카드가 실패에 가까워지면서 이에 대한 비판은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7일 마크롱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RN이 압승하자, 즉시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발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의 혼란을 막기 위해 조기 총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2027년 5월까지 임기를 채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동거 정부가 들어설 경우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려던 각종 개혁안은 무산되거나 수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마크롱 대통령이 ‘승부수’로 띄웠던 조기 총선이 ‘도박’이 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극우 국민연합과 좌파의 압박을 받는 마크롱 대통령은 통치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상태에 직면해 있다”면서 “프랑스의 중심이 붕괴되고 마크롱이 고립됐다”라고 평가했다. NYT는 “마크롱과 바르델라는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어서 불편한 파트너십을 맺게 될 것”이라며 “마크롱은 매우 큰 극우 그룹과 의회 내의 좌파 및 극좌 연합으로부터 극심한 반대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도 “마크롱은 조기 총선으로 프랑스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멈추고자 했지만 반대의 결과가 됐다”라고 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마크롱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임명권을 활용해 자신의 사람들을 배치할 계획을 세웠다”라며 “총선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RN과의 동거를 준비하고 있었다”라고 전했다. 칼럼니스트 파스칼 코퀴스는 알자스 지역 언론 DNA에 실은 글을 통해 “(1차 투표는) 마크롱주의의 종말을 보여준다”면서 “선거 모험주의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NYT도 “마크롱 대통령이 서둘러 실시한 프랑스 의회 선거 1차 투표는 국가가 정치적으로 혼란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었다”라고 평가했다.

총선 2차 투표에서도 RN이 의회 과반수를 확보해 동거 정부가 되면 극우가 프랑스 정책의 상당 부분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정치학자 진 가리게스는 AP통신에 “동거 정부에선 실질적으로 대통령이 아니라 총리의 정책으로 국가가 돌아간다”라고 말했다. 중동의 CNN으로 불리는 알자지라는 “마크롱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 면에서는 주도적 역할을 유지하겠지만, 국내 정책을 수립할 권한은 잃게 된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