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들여다본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이 하나 있었다. ‘Digital Transformation Payday’라는 책이었다. 국내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payday에는 ‘급여날’이란 뜻 외에 ‘엄청난 액수의 돈이나 성공, 명예 등을 얻게 되는 날’이란 뜻도 있다. 제목의 의미를 ‘디지털 전환 대박나는 날’ 정도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팀 보트케는 모니터 딜로이트의 시니어 전략 파트너. /딜로이트 제공

디지털 전환처럼 식상한 주제가 또 있을까?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오랜 시간 강조해 온 주제라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여지가 크지 않을 듯 했다. 역으로 그런 주제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면 뭔가 대단한 통찰을 담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인 팀 보트케는 모니터 딜로이트의 시니어 전략 파트너로 지난 22여년 동안 20여개국의 고객들을 상대로 디지털 전환을 조언해 왔다. 본업인 컨설팅 외에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유럽 최정상급 경영대학원 SDA 보코니에서 학생들과 경영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모니터 딜로이트는 세계 4대 회계법인(딜로이트·EY·KPMG·PwC) 중 하나인 딜로이트 산하 컨설팅회사로 전 세계 150여 개 이상의 국가에서 다양한 전략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빅4 회계법인 계열 전략 컨설팅사 중 가장 파급력이 큰 기관으로 평가된다. 보트케 선임 파트너에게 디지털 전환에 대해 이메일로 몇가지 질문을 던졌다.

─책이 근간을 둔 ‘디지털 전환’의 정의가 궁금하다.

“디지털 전환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또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서 좁은 의미의 정의는 계속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 전환을 통해 얻으려 하는 게 뭔지 우선 생각해봐야 한다. 디지털 전환의 궁극적인 목적은 ‘경쟁 우위’를 창출하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 당장 경쟁우위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하고, 지속적으로 경쟁우위를 유지할 수 있으면 더 좋다.”

─경쟁우위를 추구하는 기업 활동은 광범위하다. 더구나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장기간 비용과 자원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디지털 전환의 무게중심은 ‘전환’에 있어야 한다. ‘디지털’은 전환에 필요한 다른 요인들을 지탱하고 돕는 지지대 같은 것이다. 기술은 빠르게 변화할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따라서 기술은 물론 고객 수요와 관련 인력의 숙련도, 향후 운영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야 디지털 전환에 성공할 수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을 빼놓고 디지털 전환도 논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성형 AI의 급부상은 디지털 전환에 기회이자 도전이다. 모든 이들이 이 기술을 사용한다면 어떻게 경쟁 차별화를 이룰 수 있을까? 사실 생성형 AI가 새로운 건 딱 한 가지다. 누구나 사용하기 쉽고 이해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라는 점이다. 생성형 AI의 기반이 되는 아이디어와 모델은 꽤 오래 전에 개발된 것인데, 이제서야 대중시장(mass market)에서 상용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생성형 AI를 사업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관해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가 제시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모든 산업이 생성형 AI를 활용해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선 소프트웨어 산업은 생성형 AI를 활용하면 전환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제품 개발, 품질 검증, 보수정비 등을 자동화해 생산성을 향상하고 속도를 끌어올리고 테스트와 보수정비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다. 또 최종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기업 운영과 고객 응대 업무에 생성형 AI 솔루션을 적용해, 더욱 효율적이고 상호작용이 강화된 고객 서비스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영화 제작사들은 생성형 AI를 도입해 생산성을 향상하고 혁신적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 생성형 AI의 산업 활용사례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 기술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될지는 모든 기업이 예의주시하면서 끊임없이 실험적 도입을 시도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디지털 전환을 다룬 책은 이전에도 많이 있었다. 이 책이 특별한 관심을 받는 이유는 뭘까.

“10년에 걸쳐 축적된 수천 개의 기업 데이터를 바탕으로 디지털 전환의 가치를 분석했다. 전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작업이다. AI 알고리즘이 모든 공시 및 재무 자료를 읽고, 이들 기업의 디지털 전환 상태에 점수를 매긴 후, 이들 점수와 재무성과 간 통계적 연관성을 파악했다. 결론적으로, 수많은 데이터를 파헤쳐 디지털 전환 노력이 시가총액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한 것이다. 평균적으로 디지털화가 많이 진행 된 기업의 기업가치가 높은 경우가 많았다. 다만 ‘평균’에 너무 큰 의미를 두면 곤란하다. 많은 패자가 끌어내린 평균치를 몇몇 승자가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디지털 전환에 따른 단기적 재무 이익은 산정하기 어렵다.”

─디지털 전환이 언제나 필요하고 효과가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뜻으로 들린다.

“디지털 전환 노력에 수반되는 막대한 투자가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지만 기술만으로는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다. 인력과 기술의 변화도 매우 중요하지만 간과하기 쉽다. 총체적인 변화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수다. 최근 우리 팀에서 실시한 연구 결과를 보면 포천 500 대기업 기준으로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전략을 갖추고 이를 위한 기술 투자도 충분했지만 변화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경우, 최대 1조7500억 달러(약 2350조원)의 기업가치를 상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이들 기업이 디지털 전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때는 최대 1조2500억 달러(약 1679조원)의 기업가치가 창출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팀 보트케의 책 ‘Digital Transformation Payday’표지. /와일리 제공

─궁극적으로 디지털 전환 성공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

“성공한 디지털 전환은 시장에서 가치를 창출한다. 주주 이익은 최소한 실현해야 하며, 여타 이해당사자들도 누릴 수 있는 간접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이상적일 것이다. 디지털 전환은 결국 주주 이익을 실현하고 수익을 내야 하는 투자다. 책의 제목을 ‘Digital Transformation Payday’로 정한 것도 관련이 있다.”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에 대해 자본시장과 어떻게 소통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다른 조건이 동일할 경우 디지털 전환의 의도를 자본시장에 더욱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낼수록 기업가치가 올라간다. 달성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자본시장에 디지털 전략을 상세히 공유하면 주가 흐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디지털 전환 목표에 부합하는 기술투자 전략을 제시할 수 있다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대기업은 오너들이 직접 경영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전환과 같은 대대적인 투자 결정은 오너의 결단 없이는 이뤄지기 힘들다. 관련 의사결정에 대한 조언 부탁한다.

“오너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더욱 직접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 우선 오너가 자사의 사업 전략을 ‘아웃소싱’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 그럴 의사가 없다면 디지털 전환 또한 아웃소싱해서는 안 된다. 디지털 전략은 사업 전략의 성공적 이행을 위한 중요한 도구인 만큼 그런 도구를 외부인의 손에 쥐어주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일 수 있다. 결국 이사회가 지금보다 기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더 많이 쌓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수 경영대학원에 이사회와 기업 경영자들을 위한 디지털 기술 과정이 마련돼 있으니, ‘안전한 환경’에서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