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길을 열어줬던 ‘흑해 곡물 수출 협정’ 불참을 선언한 이후 전 세계를 상대로 협상을 벌이려고 시도하고 있다. 러시아는 불참 선언 하루 만에 우크라이나의 주요 곡물 수출 항구인 오데사를 공격하더니, 사흘 연속 대규모 공습을 이어가며 곡물 수출 인프라를 파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오데사에 위치한 중국 영사관 건물마저 파손됐다. 우방국인 중국의 외교 시설까지 파괴할 정도로 무차별 공격을 하는 것이다. 여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라”며 경제 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곡물 수출 재개를 원하는 세계를 상대로 위협을 가하고 있다.

20일(이하 현지 시각)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이날 새벽까지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항구인 오데사를 사흘 연속 공격했다. 이로 인해 오데사와 남부 항구 도시인 미콜라이우 등에서 최소 20명이 부상을 당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러시아의 공습으로 수출용 고물 6만톤이 손실됐다.

우크라이나 오데사 항구에 있는 곡물 저장 터미널. / 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오데사 공습으로 중국 영사관도 피해를 봤다. 오데사 지역의 군정 책임자인 올레프 키페르는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의 공격을 받아 손상된 중국 영사관 사진을 올렸다. 해당 사진 속 중국 영사관은 창문이 깨진 모습이다. 키폐르는 “러시아는 고의로 항만 인프라를 공격하고 있다”며 “인근의 주거용 건물뿐만 아니라 중국 영사관이 손상됐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는 “영사관 직원들은 현장을 떠나있었기 때문에 다친 사람은 없다”면서도 “폭발파로 인해 건물 벽면과 유리창 일부가 파손됐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흑해를 봉쇄했다. 이후 국제 밀 가격이 폭등하고, 저개발국에서 식량난이 초래되면서 국제 사회의 비판이 급증했다. 이에 러시아는 튀르키예와 유엔의 중재로 지난해 7월 흑해 곡물 수출 협정을 맺고 우크라이나가 곡물을 수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협정은 러시아가 곡물과 비료를 수출하는 것도 보장했다.

러시아는 4차례에 걸쳐 이 협정을 연장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산 곡물과 비료 수출이 서방의 비협조로 인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협정 탈퇴를 재차 주장해 왔고 17일 결국 탈퇴를 선언했다. 이후 18일부터 러시아는 오데사를 비롯한 흑해 연안 항구를 공격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7일 “우크라이나는 유엔과 튀르키예의 협조 아래 곡물 수출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러시아 국방부는 “20일부터 흑해에서 우크라이나 항구로 향하는 모든 선박을 잠재적 군용 화물 운송선으로 간주한다”며 공격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가 흑해 곡물 수출 협정 불참을 선언한 데 이어 오데사 등을 공습하면서 국제 곡물가는 급등하고 있다. 19일 시카고상품거래소(CBT)에서 9월물 국제 밀 선물가격은 전일 대비 8.5% 급등한 부셸당(1부셸=27.2kg) 7.27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일일 기준 최대 상승 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