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파키스탄에 수출한 중국형 원전 화룽 1호(華龍一號)가 2일 정식 인도됐다. 중국이 화룽 1호 기술을 적용한 카라치 K2·K3 원자로 완공 후 임시로 갖고 있던 운영권을 파키스탄에 완전히 넘긴 것이다. 화룽 1호는 중국이 독자적으로 설계·개발한 3세대 원자력 기술로, 중국 원자력 발전 굴기의 상징이다. 부품 국산화율이 85% 이상이다. 중국은 2013년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의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핵심 협력국인 파키스탄에 화룽 1호를 첫 수출한 데 이어, 지난해 2월엔 남미 아르헨티나에도 수출했다. 중국은 지난해 중국 내에서도 총 10기의 원자로 건설을 새로 승인하는 등 원전 패권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국영 기업 중국핵공업그룹(CNNC)은 이날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K3 원자로 완공식을 열었다. CNNC는 "카라치 원자력 발전소의 화룽 1호 원자로 2기(K2·K3)를 파키스탄에 공식 인도했다"고 밝혔다. K2·K3 원자로 완공 후 CNNC가 초기 단계 운영과 통제를 맡았다가, 이날부로 파키스탄에 카라치 원전 운영권을 모두 넘긴 것이다. CNNC는 "우리나라의 자주 3세대 원전 화룽 1호 2기가 파키스탄에 수출돼 완공을 거쳐 가동을 시작한 후 파키스탄 측에 정식 인도됐다"며 "일대일로 제안 10주년인 올해, 양국 원자력 협력의 또 다른 중요 이정표가 세워졌다"고 했다.
파키스탄 남부의 카라치 원전은 화룽 1호 기술로 만든 2호 기조(유닛, K2)와 3호 기조(K3)로 구성돼 있다. K2 원자로는 2015년 착공 후 2021년 3월 파키스탄 전력망에 연결된 데 이어, 그해 5월 정식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K3 원자로는 2016년 착공 후 지난해 4월 임시 검수를 통과하며 상업 운전 단계에 진입했다. K2·K3 모두 파키스탄의 단일 원자로 중 첫 100만 킬로와트급 원자로로, 중국 국내외에서 화룽 1호를 사용한 세 번째, 네 번째 원자로다.
CNNC는 상업 운전 시작 후 K2·K3 원자로의 누적 발전량이 200억 킬로와트시(kWh)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CNNC는 "현지 200만 명의 생산·생활용 연간 전력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양"이라며 "K2·K3 원자로 연간 발전량은 석탄 624만 톤을 태워 얻는 발전량과 같으며, 이산화탄소 배출을 1632만 톤 줄일 수 있다"고 했다. 파키스탄의 전력 부족과 정전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게 CNNC의 설명이다.
린보창 샤먼대 중국에너지정책학연구소장은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최근 몇 년간 원자력 기술 수입에서 벗어나 자체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며 "카라치 화룽 1호 원전 프로젝트 완수로 개발 도상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중국 원전 도입이 성사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의 선진국 원전 건설 진출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영국은 지난해 2월 영국 남동부 에섹스주 브래드웰 원전에 중국 화룽 1호 원자로 사용 적합 평가를 내렸다. 앞서 2016년 9월 중국 국영 중국광핵그룹(CGN)과 프랑스 국영 기업 EDF는 영국 정부와 영국에 원자로 3기를 건설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영국과 중국 관계가 나빠지면서 중국의 영국 원전 프로젝트 참여가 좌초됐다. 리시 수낙 영국 총리는 지난해 10월 취임 후 "영국과 중국 관계의 황금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그해 11월 영국 동부 서포크 해안의 사이즈웰 C 원전 건설에서 CGN을 제외시켰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선언한 2060년 탄소 중립을 실현하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2019년부터 원전 건설을 다시 적극 추진하고 있다. 2060년까지 3000개에 달하는 석탄 화력 발전소를 정리하고 모든 에너지원을 재생 에너지로 구성한다는 게 중국의 계획이다. 풍력·태양광·원자력이 이 계획의 핵심이다.
중국 정부는 2021년 3월 공개한 제14차 5개년(2021~2025년) 계획과 2035년 장기 목표 초안에서 2025년까지 원자력 설비용량을 2020년 말(49.9GW) 대비 40% 많은 70GW(기가와트)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당시 청정 에너지원 중 원자력만 콕 집어 목표치를 언급했다.
이어 중국광핵그룹(CGN)은 2035년까지 원자력 설비용량을 총 200GW로 확대하겠다는 장기 목표를 내놨다. 2021년부터 15년간 최소 150기의 원자로를 추가하겠다는 얘기와 같다. 2021년 11월 블룸버그는 "이는 지난 35년간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지은 원자로 수보다 많은 것으로, 3700억~4400억 달러(약 550조 원)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르면 2020년대 중반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원자력 발전국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안전 문제 우려로 새 원전 프로젝트 승인을 중단했다. 미국·프랑스·러시아·캐나다 등과 계약한 원전 건설이 기술적 문제로 수년씩 연기된 영향도 컸다. 중국은 2019년에야 원자로 6기 건설을 허가하며 원전 프로젝트를 재개했다. 중국이 직접 개발한 국산 원전 설계 기술의 실제 적용이 가능해진 시점과 일치한다. 중국은 2021년 2월 남동부 푸젠성 푸칭시에서 화룽 1호를 첫 적용한 푸칭 5호의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중국원자력산업협회(CNEA) 발표에 따르면, 2022년 12월 말 기준 중국에서 가동 중인 원자로는 55기다. 지난해 새 원자로 2기 완공 후 처음 연료가 공급됐다. 산둥성과 푸젠성 등 중국 동남부 해안에 원전이 집중됐다.
지난해 중국 연간 전체 발전량에서 원자력 비중은 2020년 5월 말 2.5%에서 4.98%로 높아졌다. 각 에너지원 비중은 화력(69.77%), 수력(14.33%), 풍력(8.19%), 원자력(4.98%), 태양 에너지(2.73%) 순이었다. 지난해 신규 원자로 건설 승인 건수는 푸젠성 장저우 원전 2기와 광둥성 롄장 원전 2기를 포함해 10기로 늘었다.
시장조사 업체 스태티스타 집계에 따르면, 2022년 5월 기준 전 세계 약 30국에서 439기의 원자로가 운영 중이었다. 미국이 92기로 가장 많았고, 프랑스가 56기로 2위, 중국이 54기로 3위였다. 당시 세계 각국에서 건설 중인 원자로는 53기였다. 중국에서 건설 중인 원자로가 15기로 가장 많았고 인도(8기), 한국(4기), 러시아(4기), 터키(3기)가 그 뒤를 이었다. 미국이 건설 중인 원자로는 2기였다. 현재 짓고 있는 원자로 수를 감안하면, 중국이 프랑스를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원자력 대국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국은 이동성이 좋은 부유식 해상 원전, 소형 모듈 원자로(SMR) 등 신형 원전 개발에도 나섰다. 2021년 9월 러시아 국영 로사톰이 러시아 극동 추코트카에 짓고 있는 부유식 해상 원전 건설 협력사로 중국 기업이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