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러시아의 군사동원령을 피해 러시아에서 탈출한 5명의 러시아인이 지난 3개월 동안 인천국제공항에서 머물고 있다. 한국에 난민 신청을 했으나 법무부는 징집 거부는 난민 인정 사유가 아니라며 심사 회부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이들 중 3명은 법무부의 결정에 항소한 상태로 난민 신청 자격 여부는 오는 31일 알 수 있다.

28일(현지 시각) CNN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러시아인 5명이 인천국제공항 출국장과 면세점 구역에서 지내고 있다. 이들 중 3명은 지난 10월, 나머지 2명은 11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망명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이들이 난민 신청 자격조차 없다고 판단해 난민 신청을 거절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9월 21일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위해 군사 동원령을 내렸고, 약 18만 명이 러시아를 떠났다. 시베리아 출신인 대학생 블라디미르 마락타예프(23)는 워싱턴포스트에 “9월 24일 징집통지서를 받고 집을 나섰다”며 “나는 사람들을 해치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웃 형제 국가를 정복하는 제국주의 전쟁”이라며 “고향을 지키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설 연휴를 앞둔 19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점이 출국하려는 이용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 뉴스1

마락타예프는 한국을 망명국으로 택한 이유에 대해 “전임 대통령이 부패를 포함한 범죄에 대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됐다는 기사를 보고 한국을 목적지로 선택했다”며 “러시아 지도자들이 부패,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상쾌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30대 남성은 지난해 9월 28일 반(反)정부 집회에 참여한 이후 조사를 받고 나서 징집 통지를 받고 러시아를 떠났다. 그는 “시베리아에 있는 한 안전하지 않았고, 징집 통지 이후에는 집이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었다”며 “최전방으로 보내질 것이 두려워 아내와 아이를 두고 탈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라 한국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여권과 탑승권이 압수된 상태로 면세구역에서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러시아 은행에 대한 금융 제재가 시행되고 있어 이들이 가진 러시아 신용 카드는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러시아 은행에 돈을 송금하고 그 자리에서 현금을 줄 수 있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관광객과 이야기를 나눈다.

공익법센터 이종찬 변호사는 “징병 기피는 난민 지위를 받는 자격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법무부가 난민 신청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러시아와 같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강제 징집될 위험에 처한 사람이 전쟁에 반대한다는 이유라면 난민으로 간주해야 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이어 “이들에게는 하루 한 끼, 점심이 제공된다”며 “나머지는 빵과 음료로 연명하고 있으며 샤워를 할 수는 있지만, 손빨래해야 하고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제한적이며 이들의 불안정한 상황을 고려할 때 필요한 정신 건강에 대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신체 건강한 남성이 군대에 입대하도록 하는 한국은 병역 기피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인천국제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분주하고 깨끗한 공항 중 하나이지만, 이들에게는 지루하고 불안하며 긴장감이 느껴지는 공간이며 이들은 신선한 공기와 야외 산책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