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물리학은 물리학계에서 오랫 동안 비주류 취급을 받아 왔다. 아인슈타인마저도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죽을 때까지 양자 물리학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양자를 이용한 기술은 그 사이에도 차근차근 진화 과정을 밟아왔다. 양자 컴퓨터가 최근 수년간 괄목할 만큼 발전을 거듭했고, 양자 통신과 양자 센싱 등 일상적으로 사용 빈도가 높은 양자 기술 역시 상용화 단계까지 성장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도 양자 얽힘 현상을 현실에서 증명한 세 명의 물리학자들에게 돌아갔다. 향후 미래 산업계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꼽히는 양자의 시대가 이제 막을 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코노미조선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양자의 개념이 무엇이고, 양자가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알아봤다.

[편집자 주]

IBM의 양자 컴퓨터 ‘퀀텀 시스템 원’. 사진 IBM

10월 4일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양자(量子·quantum) 정보에 기반한 새로운 기술의 길을 연 세 물리학자를 올해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존 클라우저(John F. Clauser·80) 미국 존 클라우저 협회 창립자, 알랭 아스페(Alain Aspect·75) 프랑스 파리 사클레대 교수 겸 에콜폴리테크 교수, 안톤 차일링거(Anton Zeilinger·77) 오스트리아 빈대 교수는 각각 1972년, 1982년, 1997년 독자적으로 수행한 실험을 통해 두 개 이상의 입자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단일 단위처럼 움직이는 양자의 얽힘(entanglement) 성질을 증명했다.

양자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영화나 TV 드라마에 간간이 등장했다. 영화 ‘스타트렉’에는 사람을 인수분해 입자처럼 기본 입자로 분해한 다음, 이를 에너지로 바꿔 원하는 장소로 이동시키는 ‘원격 전송(teleportation)’이 등장한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은 영화에서와는 달리 물질 자체가 아닌 물질에 담긴 정보를 순간 이동시키는 원격 전송을 구현할 길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

양자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불연속적인 덩어리의 성질을 가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모든 것이 반듯하게 연결된 완성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비연속적인 원자(분자를 이루는 물질의 최소 단위) 덩어리가 모인 것이다. 이 같은 속성이 물질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물질이 가지는 에너지 역시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불연속적인 덩어리의 모임이다. 이것이 바로 양자의 개념이다. 이러한 양자의 운동 법칙을 다루는 학문을 양자 물리학이라고 한다. 양자 물리는 전문가들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분야다. 이번에 노벨상을 받은 클라우저 교수도 “고백하건대 이날까지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양자 물리가 인류가 과학 기술에서 추구하는 마지막 봉우리로 간주되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산업계에선 양자를 이용한 ‘양자 혁명’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IBM·구글·인텔 등이 잇따라 양자 컴퓨터 분야에서 성과를 발표하고 있고, 올해만 해도 HSBC와 노보 노디스크 등 금융·제약 분야에서 양자 컴퓨팅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기업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최근 SK텔레콤이 양자를 기반으로 한 암호 기술과 가스 누출 감지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한상욱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양자정보연구단장은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두고 “양자 기술이 양자 산업으로 진화하려는 시기에, 양자 물리학이 유망한 산업 분야로 인정받게 됐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코노미조선’이 ‘양자 기술 혁명’을 기획한 이유다.

허창용 한국양자협회 이사장에 따르면, 일상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는 양자역학 분야는 ①양자 컴퓨터 ②양자 통신 ③ 양자 센싱(sensing) 등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기존 컴퓨터의 정보 처리 단위 비트(bit)가 0과 1 이진법을 사용해 정보를 계산하고 처리하는 반면, 양자 컴퓨터의 단위 큐비트(qubit)는 단순하게 0 혹은 1이 아니라 00, 01, 10, 11 등 0과 1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여러 상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양자 중첩(superposition) 현상이 양자 컴퓨터의 기반인 셈이다. 비트와 큐비트의 처리 속도를 비교하면 큐비트 속도가 2의 n제곱 배만큼 빠르다. 이론상으로 슈퍼컴퓨터가 1024비트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100만 년이 걸리지만, 양자 컴퓨터로는 단 몇 초에서 몇 시간 내면 풀 수 있다는 뜻이다. 양자 컴퓨터가 활성화되면 금융 시장 예측부터 신약·신소재 개발 등 다양한 분야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퀀텀 점프(단기간에 비약적인 발전)’를 이룰 수 있다.

양자 통신은 물질에 대한 근본 정보인 ‘양자 정보’를 전송한다. 예를 들어 빛의 양자 입자, 즉 최소 단위는 광자(photon)인데, 이 광자의 양자 정보를 다른 광자에 보내는 식이다. 그런데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게 두 가지 있다. 첫째, 양자역학에선 관찰하는 순간 그 대상이 바뀌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자를 이용한 통신에서는 양자의 상태를 본 뒤에 전송할 수 없어 대신에 중개자를 이용한다. 둘째, 양자엔 얽힘 속성이 있어 양자역학적으로 상관관계가 있는 대상을 변화시킨다. 암호가 외부에 노출되면 관련 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 기존 통신망과 달리, 이처럼 얽혀 있고 훔쳐보면 실체가 변화하는 양자를 기반으로 한 통신은 해킹이나 도청 자체가 불가능하다. 클라우저 교수는 올해 초 강연에서 “(인류가) 가까운 미래 전 세계에 걸쳐 양자 통신을 갖게 될 것”으로 낙관했다.

양자 센싱 기술은 양자를 활용해 물체를 감지하거나 물질을 분석한다. 메탄가스 등 냄새와 색깔이 없어 일반 센서로는 감지하기 힘든 것들도 즉각 감지할 수 있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KRIT)는 지난 9월 발간한 ‘미래 전장(戰場) 양상을 바꾸는 양자 기술 10선’이라는 보고서에서 양자 센서가 다양한 위치에서 접근하는 적을 효율적으로 탐지하고, 정밀 항법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리서치 기관인 CB인사이츠 역시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양자 센싱을 향후 10년 내 세상을 바꿀 잠재력을 지닌 게임 체인저(game changer·판도를 바꾸는 사람이나 사물)로 꼽았다.

이처럼 양자가 우리 미래를 바꿀 핵심 요소로 부각됨에 따라 세계 각국은 양자 우위를 점령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양자컴퓨터, 통신, 센싱 세 개 분야를 아우르는 양자정보통신 분야에서 논문과 특허 출원 수는 모두 중국이 세계 1위다. 하지만, 영향력 등을 감안한 종합 경쟁력의 경우 논문은 유럽·미국·중국·일본·한국, 특허는 미국·유럽·일본·한국·중국순으로 파악됐다고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이 전했다.

미국은 일찌감치 양자 분야 시장 선점에 돌입했다. 2018년 ‘국가 양자 이니셔티브 법’을 제정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양자 정보 분야 연구개발(R&D)에 최대 12억달러(약 1조7496억원)를 투자하기로 한 데 이어 작년엔 백악관 직속으로 국가 양자 조정실을 설치하고 올해 5월엔 국가 양자 구상 자문위원회 역할을 강화하는 행정명령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했다. 미국의 민간 기업도 발 벗고 나선 분위기다. IBM은 작년 127큐비트급 양자 컴퓨터를 개발한 데 이어 2025년엔 4000큐비트 양자 컴퓨터를 선보일 목표를 세웠다. 2029년까지 양자 컴퓨터를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구글은 이미 2019년 53큐비트 양자 컴퓨터로 슈퍼컴퓨터로 푸는 데 1만 년이 걸리는 문제를 단 3분 만에 풀어내는 ‘양자 우월(quantum supremacy)’을 달성한 바 있다.

중국 기업 바이두가 공개한 양자 컴퓨터 ‘치엔스’. 사진 로이터연합

중국은 2018년 이미 ‘양자 연구 집중 지원법’을 제정해 양자 기술을 집중 지원 중이다. 이에 힘입어 바이두(百度) 등 민간 기업이 올해 10큐비트 프로세서를 가진 양자 컴퓨터 ‘치엔스(乾始)’를 공개했다. 앞서 2017년엔 세계 최초로 개발한 양자 통신 위성 ‘묵자호(墨子號)’를 이용한 양자암호통신실험에 성공했고, 2025년까지 이를 이용해 중국 내 1000만 명에게 이동 통신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양자 경쟁에서 한발 뒤처진 일본은 2030년까지 1000만 명이 양자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한국 역시 지난해 2030년까지 ‘양자 기술 4대 강국’을 목표로 양자 컴퓨팅·통신 분야에서 선진국들과의 격차를 빠르게 따라잡겠다고 선포했다.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양자 컴퓨터 기술이 2040년까지 8500억달러(약 1239조3000억원)에 달하는 가치 창출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양자 정보통신 시장 규모 역시 2027년 55억9400만달러(약 8조1560억원)로 2019년(10억8400만달러)의 약 5배에 이를 전망이다(정보통신기획평가원). 백악관은 “양자역학의 최근 혁신이 에너지부터 의약까지 미국 경제를 혁신해 모든 미국인을 위해 전혀 새로운 산업, 좋은 일자리, 경제 기회를 창출할 것”이라고 했다. 양자 기술 패권 전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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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중첩(quantum superposition)

여러 양자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빨간 공과 파란 공을 한 개씩 주머니에 넣었다고 가정했을 때, 공을 꺼내 확인하기 전까진 특정 색깔로 결정되지 않고 두 가지 색깔이 모두 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일반 컴퓨터가 데이터를 0 또는 1로 나타낼 때, 이를 양자 컴퓨터는 0이면서 동시에 1로 나타낼 수 있는 이유다.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미시 세계에서 두 개 이상의 양자가 거리와 무관하게 서로 연결돼 상관관계를 갖고 있음을 뜻한다. 만약 빨간 공과 파란 공을 넣은 주머니에서 꺼낸 공이 파란색임을 확인하는 순간, 주머니에 남은 다른 공의 색깔은 꺼내서 확인하지 않아도 즉시 빨간색으로 결정된다. 이처럼 각 양자는 보이지 않는 관계로 얽혀있어 한쪽의 상태 변화가 다른 양자에 즉각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양자 전송의 기본 원리가 된다.

이코노미조선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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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세상을 뒤바꿀 양자 기술

①미래 ‘게임 체인저’ 양자 기술, 패권 경쟁 속으로

②아스페·클라우저·차일링거,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

③[Infographic] 양자 기술 혁명이 온다

Part 2. 양자 기술 기업들

④[Interview] 티머시 코스타 엔비디아 HPC 및 양자 컴퓨팅 제품 리드

⑤[Interview] 백한희 IBM 왓슨연구소 연구원

⑥[Interview] 칼 와드 아마존웹서비스(AWS) 아시아·태평양·일본 공공 부문 솔루션스 아키텍처 총괄

⑦[Interview] 하민용 SK텔레콤 CDO

Part 3. 전문가 제언

⑧[Interview] 한상욱 KIST 양자정보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