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면서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회사에서 샤워를 하거나 폭염에도 선풍기 조차 틀지 않고 지내는 등 최소한의 에너지만 소비하는 유럽인들이 늘고 있다.

런던에 거주하는 한 영국 여성이 전기 계량기를 점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유럽국가들의 경제 제재 보복으로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관을 잠그면서 올겨울 유럽인의 에너지난이 더 심각해질 가능성도 커졌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동부 니다에 거주하는 엘칸 에르덴 씨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매일 퇴근 후 회사에서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한다"고 말했다. 독일 가정의 7월 에너지 비용은 전년동기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독일의 평균적인 공동주택 가구에 적용되는 난방유의 5월 가격은 작년동기대비 78% 폭등했다.

영국 동부 그림스비에 사는 필립 키틀리 씨는 영국에 기록적 폭염이 강타했던 올여름에도 선풍기를 돌리지 않았다. 지난 4월에 직장을 잃고 월 600파운드(약 95만 원)의 복지지원금으로 생활하는 그는 로이터에 "은행 계좌의 잔액을 보고 전기요금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생활비는 증가했지만 수입은 에너지 위기 이전 수준이라 식비와 공과금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달 초 영국의 새 수장으로 오른 리즈 트러스 총리는 오는 10월부터 가계 에너지 요금 80% 인상 계획을 취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영국 정부가 차입금 방식으로 에너지 요금 동결에 따른 비용을 충당한 뒤 10~15년에 걸쳐 에너지 세금으로 회수하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유럽 가스 가격의 지표가 되는 네덜란스 TTF는 지난 12개월 동안 550% 급등했다. 영국의 에너지 규제기관인 오프젬은 표준가구의 가정용 전기·가스 요금이 오는 10월부터 연 3549파운드(약 560만원)로, 80% 인상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가구당 매월 평균 50만원에 가까운 돈을 에너지 비용으로 쓰는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5%에 달하는 이탈리아 가정의 에너지 지출 비중은 지난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며, 독일의 가격포털 체크24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7월 독일 가구의 에너지 비용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에너지 가격이 지금처럼 상승세를 이어갈 경우 내년 영국의 물가상승률이 22%에 달할 수 있다고 최근 경고했다. 영국 가계의 에너지 요금 상한선이 80%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물가 관련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나온 발표다.

CNBC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30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에너지 비용이 현재 속도로 계속 상승할 경우 영국의 인플레이션이 22.4%로 정점을 찍고 국내총생산(GDP)가 3.4%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영국의 물가상승률은 6월 9.4%, 7월에는 10.1%를 기록한 바 있다. 골드만삭스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완만하게 이어질 경우 영국의 최고 인플레이션은 1월 14.8%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이달 초 영란은행이 예측한 13.3% 를 웃도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러시아 정부는 지난 5일 서방 국가들이 대러 제재를 해제할 때까지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폐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대통령 집무실이자 관저인 크레믈린궁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독일과 영국 등 서방이 대러 제재를 해제할 때까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노르트스트림1′을 폐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른 기술적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폐쇄가 정치적 이유임을 분명히 했다. "현 사태의 책임은 제재를 남발한 서방에 있다"도 했다.

앞서 러시아의 최대 천연가스 회사 가즈프롬은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누출을 이유로 노르트스트림1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EU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가스를 무기화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으며, 미국 백악관도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화하고 있다며 이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노르트스트림1은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단일 최대 가스 파이프라인으로, 연간 550억 입방미터(bcm)의 가스를 공급할 수 있다.러시아의 이 같은 조치로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폭등하고 있다. 러시아가 지난 2일 노드스트림1을 폐쇄한다고 밝히자 사흘 만에 유럽 가스 가격은 35% 폭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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