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명품 신발 업체인 마놀로블라닉이 중국에서 22년간 상표권 소송을 진행한 끝에 결국 승소했다. 마놀로블라닉은 창업자이자 신발 디자이너인 마놀로 블라닉(Manolo Blahnik)의 이름을 딴 브랜드다.
19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중국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법원은 한 중국인 사업가가 소유한 마놀로블라닉 상표권을 말소했다. FT는 이를 "드문 판결"이라고 평가하면서 "마놀로블라닉이 세계에서 가장 성장세가 빠른 명품 시장인 중국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마놀로블라닉의 대표이사(CEO)이자 창업자의 조카인 크리스티나 블라닉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최종 승소 소식을 들었을 때 눈물이 났다"며 "22년간 소송에 쏟아부은 비용을 다 합산하면 심장마비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진출을 위한 계획을 짜고 있다"면서 "늦어도 내년 하반기에는 공식 판매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매년 수백만 건의 상표권이 출원되는 중국에는 '상표 브로커'가 아직 중국에 진출하지 않은 해외 브랜드의 상표를 무단으로 먼저 등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방식으로 상표권을 선점한 브로커들은 추후 해당 기업이 중국 시장 진출을 하려고 할 때 이를 막거나 상표권을 넘겨주는 대가로 거액의 돈을 요구한다. 지식재산권 침해 문제는 2020년 미·중 무역갈등이 고조되면서 미국의 대중 압박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중국은 2019년 상표법을 개정해 상표 브로커가 출원·등록받은 상표는 기각·무효 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이에 최근 점점 더 많은 외국 기업들이 상표권 분쟁에서 승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미국 스포츠웨어 브랜드 뉴발란스는 'N'로고를 모방한 중국 기업 2곳을 상대로 소송해 약 2500만위안(250억원)의 배상금을 받았고, 2020년에는 전 NBA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이 자신의 이름을 도용한 중국 '차오단 스포츠'를 상대로 9년간 소송해 상표권을 되찾았다.
영국의 중국 지적재산권 분쟁 전문가인 미치시타 리에코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획기적인 사례"라고 평가하면서 "다른 명품 브랜드뿐민 아니라 20년간 상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일본의 소매업체 무지(MUJI)와 같은 브랜드에도 희소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루이비통 등 다수의 명품브랜드가 중국에서 상표권 분쟁을 진행 중이다.
1971년 창립된 마놀로블라닉은 2000년대 초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서 주인공의 '꿈의 신발'로 자주 언급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결혼 프로포즈용 선물이나 결혼식에서 신부가 신는 '웨딩 슈즈'로 널리 알려졌다. 이 회사의 연간 매출액은 4000만유로(약 535억원) 수준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