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밀 유통량 급감과 물가 상승, 최악의 가뭄까지 온갖 악재와 맞닥뜨린 아프리카에서 배고픔에 허덕이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AP 통신이 8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지난 5일(현지 시각)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의 한 영양실조 구호센터에서 배고픔에 허덕이는 아이들이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AP에 따르면, 최근 아프리카 대륙 북동쪽 ‘아프리카의 뿔’ 지역엔 4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이 발생했다. 현재 상태가 유지될 경우, 1400만명 수준인 이곳 기아 인구가 연내 2000만명으로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프리카 뿔은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지부티 등 소말리아반도에 있는 국가를 일컫는다. 현지 인도주의단체 집계에 따르면 올해 소말리아 전역 영양실조 치료소에서만 어린이 448명이 숨졌다.

소말리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밀에 대한 의존도가 90%에 달해 피해가 막심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식용유 수입도 원활하지 않아 식료품 가격도 크게 치솟았다. 소말리아 주재 유엔 인도주의조정관 애덤 압델물라는 구체적 수치가 조사되지 않았다면서도, “분명히 이미 수천 명이 숨진 상태”라고 말했다.

이미 네 명의 아이가 아사(餓死)했다는 올리요 하산 살라드씨는 “가뭄이 그들을 하나씩 앗아갔다”고 호소했다. 그는 남아 있는 세 살배기 아들을 살리기 위해 90㎞ 떨어진 영양실조 구호센터에까지 걸어가야 했다. 센터는 이미 불안에 떨며 아이를 데려온 어머니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올해 소말리아 전역에 있는 구호센터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한 인원이 448명에 달한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유엔 기구들은 지난 6일 “소말리아에서 20만 명 이상이 엄청난 기아에 직면한 상태”라며, “하지만 올해 인도주의적 대응을 위한 모금은 목표액 18%에 불과하다”는 공동 성명을 냈다. AP는 아프리카에 제공돼 오던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들이 코로나 팬데믹 및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글로벌 위기가 겹쳐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은 지난 7일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만 계속 집중한다면, ‘아프리카의 뿔’ 지역 아동 사망자 수는 ‘대폭발’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루이지 디마이오 이탈리아 외교장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밀 수출을 봉쇄하고 있는 것은 수백만 어린이와 여성 남성을 인질로 잡아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다”면서 “지금 대응하지 않으면 훨씬 더 파과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역 분쟁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에티오피아 북부의 경우 2년여간의 내전으로, 서아프리카 지역은 잇따른 쿠데타와 이슬람 급진 세력의 도발로 농업 활동이 사실상 중단됐다. 남수단의 경우 가뭄과 내전으로 전체 인구의 70%가 기아 상태라는 분석도 나왔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부르키나파소, 말리, 니제르, 나이지리아 등에서도 3800만명이 기아 상태”라고 추정했다.

국제사회는 공동 대응에 나섰다. 프랑스와 스페인, 그리스 등 24개 지중해 연안 국가의 경제·농업 장관들은 8일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있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회의를 열고, 아프리카 식량 위기 해결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러시아의 흑해 봉쇄를 풀어 우크라이나산 식량 수출을 재개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이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곡물 수출 재개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터키 앙카라를 방문,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과 회담 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곡물 운송을 위한 선박들의 안전 운항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해군을 막기 위해) 설치한 기뢰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며 “(식량 수출 재개는) 전적으로 우크라이나 하기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그러나 “러시아의 해상 공격 루트를 열어줄 수 있다”며 기뢰 제거에 부정적인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