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독재와 부정 축재로 축출됐던 마르코스 일가가 36년 만에 재기에 성공했다. 이와 함께 이번 대통령으로 당선된 필리핀 독재자의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64)의 어머니이자 독재자의 아내였던 이멜다 마르코스(92)도 주목받고 있다.

10일(현지 시각) 필리핀 ABS-CBN뉴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비공식 집계를 인용해 개표율 95% 수준에서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가 3033만9026표를 득표했다고 보도했다. 2위인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1444만8183표)을 1500만 표 이상 앞섰다.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는 이달 말 공식 결과 발표를 받고 오는 6월 30일 대통령에 취임한다.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오른쪽·92)가 대통령 선거일인 9일 북일로코스주 바탁에 위치한 마리아노 마르코스 메모리얼 초등학교에서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르코스 주니어 전 상원의원인 어머니인 이멜다는 1965년부터 1986년까지 필리핀을 통치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이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집권 동안 이멜다는 마닐라 주지사와 주택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이들 부부는 지난 1986년 2월 항쟁(피플 파워)으로 실각하고 하와이로 망명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89년 하와이에서 사망했다.

필리핀에서 이멜다는 부패의 상징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1986년 시위대가 말라카냥궁을 점거했을 때 남편의 재임기간 동안 사치와 향락을 누린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며 주목을 받았다. 궁에서는 드레스, 장신구, 명품백 등 각종 사치품이 발견됐으며 여성의 구두만 3000켤레가 넘었다.

이들은 당시 황급히 궁을 떠난 이멜다가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이었다. 2003년 제작된 이멜다 전기 영화에는 “이멜다는 8년 동안 매일 구두를 갈아신었다. 하루라도 같은 구두를 연속해 신은 적이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멜다의 구두는 현재 필리핀 마닐라 박물관이 소장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외에도 대통령궁의 바닥은 이탈리아산 대리석으로, 천장은 크리스털 샹들리에로 장식돼 있었다고 전해진다. ‘치즈 스캔들’ 일화도 있다. 이탈리아를 방문했던 이멜다가 마닐라로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다시 회항하라고 명령한 일이다. 로마에서 치즈 사는 것을 깜빡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멜다는 1991년 필리핀 대법원의 사면을 받고 귀국했다. 1995년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복귀했고, 이후 3회 연임에 성공했다. 마르코스 일가는 미국의 맨해튼과 뉴욕 일대에서 부동산을 사들인 사실도 드러났으며 집권했던 20년 동안 부정 축재한 규모는 무려 100억달러(약 12조원)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