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장외에서 대치 중이었던 미국과 러시아가 자산압류를 두고 본격적인 신경전을 시작할 태세다. 미국이 먼저 강공을 취하자 러시아에서도 맞대응하면서 기싸움이 고조되고 있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조선DB

포문은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먼저 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 그룹이자 돈줄인 러시아의 신흥재벌 ‘올리가르히’들의 재산을 압류해 그 돈으로 우크라이나를 돕자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지난달 28일 의회에서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을 위한 330억 달러(약 42조200여억 원)의 예산을 요청하면서, 올리가르히의 자산 동결과 압류를 위한 사법 단속권 강화 법안을 함께 처리해달라고 주문했다.

미국 의회도 상·하원, 민주·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찬동하는 기류다. 로이터통신은 상원의 척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가 1일(현지 시각) 언론 브리핑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요청한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러시아 재벌 자산을 압류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수 있는 조항도 신설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현행 법령에서는 미국 정부가 몰수한 자산은 법무부 기금으로 귀속돼 외교적 활용이 어렵다. 하원도 지난달 27일 바이든 행정부에 비슷한 조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킨 바 있다.

현재 미국에 압류된 올리가르히 계급의 자산은 약 10억 달러 규모이고, 별도로 미국 은행 계정에 예치된 자산은 수억 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8일 상원에 이어 하원을 통과한 우크라이나 무제한 무기대여법, 속칭 랜드리스(Lend-lease)에 따라 지원될 예상 지원 규모에 비하면 적은 액수지만 정치적 상징성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도 가만 있지 않았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의장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러시아 재벌의 호화 요트와 별장이 러시아 발전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서방은 이 같은 자산을 도둑질하고 있다”며 “그런 조치를 한 비우호국 기업에 대해 똑같은 조치를 하는 것이 옳다. 이들의 자산을 몰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방 자산을 몰수해 매각한 자금은 러시아의 발전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요컨대 러시아도 러시아 내 서방 자산을 몰수해 러시아 발전에 이용해야 한다고 응수한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우크라이나를 전폭 지원하면서도, 러시아와 직접 충돌할 가능성이 낮은 분야로 지원 범위를 한정했다. 파병없이 정보나 자금을 지원하는 데 더해 무기를 지원하더라도 방어용으로 쓰이기 쉬운 보병용 무기만을 지원하는 한편, 러시아는 금융 제재, 무역 제재 등으로 압박해왔다. 러시아의 확전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빠르면 사흘내로 러시아가 승리하리라 전망됐던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선방으로 두달 넘게 이어지고 전황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보이자, 미국은 러시아의 군사적 역량을 우크라이나에서 완전히 소진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지원 범위를 넓혔다. 러시아의 불만과 반발도 그만큼 커진 상황이다.

양국의 자산압류가 현실화한다면 주요 인사들에 대한 입국금지 규제에 이어 양국간 본격적인 장외 기세싸움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