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갤럭시 S22 시리즈 홍보를 위해 중국 베이징 싼리툰 #024에 꾸민 이벤트 팝업 공간. /김남희 특파원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MZ 세대가 가장 많이 모인다는 싼리툰의 카페 겸 문화 공간인 #024. 이곳에선 이달 1일부터 ‘갤럭시 yeS22 파티’가 열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2월 출시한 갤럭시S22 스마트폰 시리즈를 홍보하는 마케팅 활동이다. 매일 저녁 6시면 대형 LED 설치물의 조명이 켜지고 공간 전체가 화려한 파티장처럼 변신한다. 파티 음식은 68위안(약 1만3000원)짜리 yeS22 햄버거 세트와 특제 음료.

이벤트 참여자는 yeS22 로고가 그려진 마스크나 빵을 경품으로 받거나, 갤럭시 제품 구매 할인 기회를 얻는다. 행사 마지막 날인 5월 5일엔 알리바바의 온라인 쇼핑몰 티몰에서 생방송 추첨을 통해 S22+ 1대를 경품으로 준다. 삼성전자가 내부적으로 중국 시장 부활을 선언하며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야심 차게 시작한 팝업(특정 기간 특정 목적에 따라 운영하는 임시 공간) 마케팅이다.

중국 베이징 싼리툰 #024에서 열린 삼성전자 갤럭시 팝업에서 한 왕훙이 S22를 들고 촬영한 사진을 샤오훙슈 계정에 올렸다(왼쪽). 오른쪽은 촬영이 끝난 후 자신의 아이폰(12 프로 또는 13 프로)을 사용하는 모습. /김남희 특파원

이달 초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인기가 많은 왕훙(網紅·인터넷 유명인을 가리키는 중국식 용어) 다수가 이곳에 나타났다. S22 온라인 홍보용 촬영을 위해 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손에 S22·S22+·S22 울트라를 들고 포즈를 취하거나, 음식 사진을 찍는 모습을 전문 사진사가 촬영했다. 순서가 있는 듯, 한 명의 촬영이 끝나면 또 다른 왕훙의 촬영이 계속 이어졌다.

이들 왕훙은 촬영을 하지 않을 땐 곧장 S22를 내려놓고 자기 전화기를 집어 들었는데, 대부분 삼성의 최대 경쟁사인 애플 아이폰이었다. 삼성전자가 소셜미디어에서 S22 제품 노출을 위해 돈을 주고 섭외한 왕훙 대다수가 실제론 아이폰 사용자인 것이다.

중국 베이징 싼리툰 #024에서 열린 삼성전자 갤럭시 S22 팝업에서 한 왕훙이 갤럭시 Z폴드3 폴더블폰을 들고 촬영한 사진을 샤오훙슈 계정에 올렸다(왼쪽). 오른쪽은 촬영이 끝난 후 자신의 아이폰 12를 사용하는 모습. /김남희 특파원

한 왕훙은 테이블 한 켠에 자신의 아이폰을 올려 둔 채, 같은 테이블에서 S22 울트라로 삼성 로고 깃발이 꽂힌 버거 사진을 찍는 모습을 촬영했다. 또 다른 왕훙은 아예 자신의 아이폰 13 프로로 S22 기기 사진을 찍기도 했다. 공식 촬영을 끝낸 왕훙 여럿이 한 테이블에 둘러 앉아 모두 아이폰을 쥐고 사진 편집을 하거나 소셜미디어 계정을 확인하는 모습도 보였다.

중국 베이징 싼리툰 #024에서 열린 삼성전자 갤럭시 팝업에서 한 왕훙이 S22 울트라 광고 촬영이 끝난 후, 자신의 아이폰을 손에 들고 있다. /김남희 특파원

당시 식사를 하며 왕훙 촬영 현장을 구경하던 일반 소비자 사이에선 “삼성 광고를 아이폰으로 찍어서 올리네” “삼성 광고인지 아이폰 광고인지 모르겠다” 등의 수군거림이 나왔다. 현장에는 왕훙을 관리하고 촬영을 진행하는 마케팅 대행사 직원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삼성 제품 모델이 촬영장에서 아이폰을 사용하는 모습이 공개되는 것을 문제삼거나 제지하지 않았다.

며칠 후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 웨이보, 중국판 인스타그램이라 불리는 샤오훙슈 등에 이날 촬영된 사진들이 속속 올라왔다. 게시물마다 ‘삼성 팝업 공간에서 열린 S22 체험 이벤트’란 성실한 설명이 붙었다. 이 중 촬영장에서 아이폰을 쓰고 있던 왕훙들이 그동안 샤오훙슈에 올린 게시물을 훑어보니, 실생활에서 아이폰으로 찍은 셀피(셀카) 게시물이 여럿 있었다. 삼성의 이번 왕훙 마케팅이 허술하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베이징 싼리툰 #024에서 열린 삼성전자 갤럭시 S22 팝업에서 왕훙들이 갤럭시 Z폴드3와 S22를 들고 촬영한 사진을 샤오훙슈 계정에 올렸다(왼쪽). 오른쪽은 촬영이 끝난 후 이들이 자신의 아이폰을 사용하는 모습. /김남희 특파원

이달 4일 웨이보 팔로어(구독자)가 260만 명에 달하는 한 왕훙은 ‘yeS22 파티’에서 S22 울트라를 들고 찍힌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이 게시물엔 ‘좋아요’가 5500개 넘게 눌렸다. 한데 이 게시물엔 ‘아이폰 12 프로’로 올렸다는 표시가 있다. 사진을 아이폰으로 찍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삼성 폰을 홍보하는 이 게시물을 아이폰으로 작성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베이징의 한 광고·마케팅 회사의 직원은 “유명 글로벌 기업이 소셜미디어에 제품 노출 조건으로 좀 잘나간다 싶은 왕훙에게 지불하는 광고료는 최소 30만 위안(약 5700만 원) 수준”이라고 했다.

중국 웨이보에서 팔로어가 260만 명인 한 왕훙이 올린 삼성전자의 갤럭시 S22 울트라 관련 게시물. ‘아이폰 12 프로’로 게시물을 작성했다는 표시가 있다. /웨이보

삼성은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선 애플과 1·2위를 다투며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중국 시장에선 애플의 경쟁 상대가 안 된다. 고가 프리미엄 시장에선 애플에 밀리고, 중저가 시장에선 샤오미·아너·오포·비보 등 중국 브랜드에 압도됐다.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미국 제재로 경쟁력을 잃은 중국 화웨이 스마트폰 사용자 상당수가 애플로 갈아타고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중국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S22 시리즈 홍보를 위해 중국 베이징 싼리툰 #024에 꾸민 팝업 공간에서 한 중국인이 S22 울트라로 음식 사진을 찍는 모습(왼쪽)과 자신의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오른쪽). /김남희 특파원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조직 개편을 하며 DX(모바일 기기·가전 담당) 부문장인 한종희 부회장 직속으로 중국사업혁신팀을 만들었다. 삼성전자 중국 법인과는 별도로 본사 차원에서 전사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중국 소비 시장을 다시 공략하기 위해 새 전략을 짜는 임무를 맡았다. 핵심 과제 중 하나가 중국 온라인·오프라인 유통 채널을 확장할 방안을 마련하고 마케팅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다. 베이징만 해도 삼성전자 매장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삼성전자는 2019년 9월 남부 광둥성 후이저우에 있던 중국 내 마지막 스마트폰 제조 공장을 폐쇄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집계에 따르면,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은 2019년 4분기(10~12월) 0%대로 추락한 후 2년 넘게 1%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013년 삼성 점유율이 20% 이상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현재 중국에서 삼성 브랜드 존재감은 없다시피 하다.

중국 베이징 싼리툰 #024에서 열린 삼성전자 갤럭시 S22 팝업에서 대행사 직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김남희 특파원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지난달 2일 갤럭시 S22 시리즈 출시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 “삼성이 애플, 중국 휴대전화 제조사와의 경쟁 격화 속에 중국 프리미엄 스마트폰 부문에서 점유율을 높이려 하고 있다”며 “그러나 중국 소비자의 신뢰를 다시 얻고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중국)에서 판매 부진을 만회하는 데 여전히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중국 소비자 사이에 브랜드 인지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브랜드 알리기에 힘을 쏟고 중국 파트너와 협력해 온라인·오프라인 판매 채널을 늘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