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맞아 중국 베이징에서 운영한 브랜드 체험관의 일부 직원이 중국 한푸(漢服)를 입고 방문객을 맞이했다. /김남희 특파원

삼성전자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맞아 중국 베이징에서 운영한 브랜드 체험관의 일부 직원이 중국 한(漢)족 전통 복식인 한푸(漢服)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중국 일각에선 우리 한복(韓服)이 중국 한푸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며 이른바 ‘한복 공정’을 벌이고 있다. 2월 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선 중국이 한복을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 의복으로 등장시켜 한국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가 굳이 양국 간 문화적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복장을 입혀 논란을 자초했다는 평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맞아 중국 베이징에서 운영한 브랜드 체험관의 일부 직원이 중국 한푸(漢服)를 입고 방문객을 맞이했다. /김남희 특파원

삼성전자는 2월 2일부터 3월 27일까지 베이징 차오양구의 쇼핑 중심지 싼리툰에서 팝업 스토어(특정 기간 특정 목적에 따라 운영하는 임시 매장)를 운영했다. 베이징올림픽 기간엔 ‘삼성 올림픽 게임 쇼케이스(체험관)’로 문을 열었고, 올림픽이 끝난 후 이달 14일부터 27일까지는 ‘삼성 갤럭시 쇼케이스’로 이름을 바꿔 운영됐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출시한 스마트폰 갤럭시S22 시리즈를 비롯해, 삼성전자가 그동안 선보인 주요 휴대전화가 전시됐다.

이달 23일 이 체험관에선 중국 한푸로 보이는 의상을 입은 남녀 직원이 방문객을 맞았다. 남성 직원은 소매가 넓고 몸체 부분이 펄럭이는 스타일의 한푸를 입었다. 여성 직원이 입은 상의와 치마 사진을 중국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에서 검색하면 ‘복고 중국식 개량 한푸’ ‘일상 중국풍 개량 한푸’ 등의 설명을 단 제품이 수없이 뜬다.

삼성전자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맞아 중국 베이징에서 운영한 브랜드 체험관의 일부 직원이 중국 한푸(漢服)를 입고 방문객을 맞이했다. /김남희 특파원

삼성전자 중국 법인은 기자가 ‘이 직원들이 입은 옷이 중국 한푸가 맞느냐’고 질의했을 당시, 관련 상황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이후 “중국 한푸가 맞는다”고 인정했다.

베이징의 한 한국인은 “이번 베이징올림픽 기간 한복 동북공정 논란으로 갈등이 큰 상황에서, 삼성이 하필이면 중국 전통 복장으로 마케팅을 해 한국인에겐 불편한 감정을 주는 것 같다”며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옷 대신 중립적인 옷을 입게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했다. 중국에서 사업하는 기업이 마케팅에 중국 의상을 이용하는 게 무슨 문제냐는 시각도 있다. 중국에서 중국인을 대상으로 장사하면서 한복을 입게 했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다만 중국 일각에서 한복과 김치 등 한국 문화와 전통을 중국의 것으로 왜곡하는 시도가 빈번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한국인이 가진 거부감과 사안의 민감성을 더 세심하게 고려했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삼성전자는 매장 관리가 소홀했다고 했다.

삼성전자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맞아 중국 베이징에서 운영한 브랜드 체험관의 일부 직원이 중국 한푸(漢服)를 입고 방문객을 맞이했다. /김남희 특파원

한푸는 중국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족의 전통 의복이다. 지난달 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선 중국 국기 오성홍기를 나르는 과정에서 한복을 입은 여성이 중국 55개 소수민족 대표 중 한 명으로 나왔다.

한국에선 중국이 한국 고유 의복인 한복을 중국 소수민족 전통 의상으로 격하시켰다는 비판이 일었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한국 일부 언론에서 중국이 ‘문화 공정’ ‘문화 약탈’을 하고 있다고 억측·비난해, 중국 네티즌, 특히 조선족 군중이 큰 불만을 갖고 있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 한국에선 반중 여론, 중국에선 반한 여론을 부추겼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도 중국 비판에 가세하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국가 간 마찰을 일으킬 수도 있는 이슈인 만큼,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서 더 신중하게 행동했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8년 12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올림픽 후원 계약을 2028년까지 연장하는 계약을 맺었다.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중국 모바일 기기 시장에서 존재감을 되찾기 위해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 홍보에 공을 들였다. 현재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은 1% 미만이다. 2013년만 해도 삼성전자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20%에 달했다. 그러나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집계에 따르면, 2019년 4분기 점유율이 0%대로 추락한 후 중국 판매량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2019년 9월 광둥성 후이저우에 있던 중국 내 마지막 스마트폰 제조 공장 문을 닫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DX(TV·가전·스마트폰·통신장비 등 담당) 부문장인 한종희 부회장 직속으로 중국사업혁신팀을 만들며 중국 시장 재도전에 사활을 걸었다. 중국사업혁신팀은 중국 내 무너진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온라인·오프라인 유통 채널을 확장할 전략 등을 총괄하는 조직이다.

삼성전자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맞아 중국 베이징 싼리툰에서 운영한 갤럭시 팝업 스토어. /김남희 특파원

2008년 하계올림픽 이후 14년 만에 베이징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은 중국 시장에서 삼성 부활을 위한 첫 무대였다. 삼성전자는 베이징의 핵심 상권 4곳에 삼성 올림픽 체험관을 열고 베이징 시내 대형 전광판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했다. 모든 참가 선수에겐 ‘갤럭시 Z플립3 5G 동계올림픽 에디션’을 선물로 주며 올림픽 마케팅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고 이건희 회장의 ‘글로벌 삼성’ 전략에 따라 1998년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부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최고 등급 후원사인 TOP(The Olympic Partner)로 활동 중이다. 현재 전 세계 TOP 후원사 13곳 중 유일한 한국 기업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2018년 12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올림픽 후원 계약을 2028년까지 연장했다.

삼성전자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맞아 중국 베이징의 한 대형 전광판에 '갤럭시 Z플립3 5G 올림픽 에디션' 광고를 하고 있다. /김남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