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스위스계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가 인신매매범부터 독재자, 부패인사, 경제제재 대상 개인들에 이르기까지 범죄자 상당수를 고객으로 은밀히 관리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뉴욕타임스(NYT)와 영국일간 가디언 등 주요 외신이 2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크레디트스위스의 로고

이 같은 사실은 CS의 내부고발자가 독일 일간 쉬드도이체차이퉁에 제보했고, 가디언, 뉴욕타임스(NYT) 등 일부 언론이 이를 보도해 알려졌다. 내부고발자가 공개한 계좌 가운데에는 1940년대에 개설된 것도 있지만 3분의2 이상은 2000년 이후 개설된 것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내부고발자가 공개한 3만여 명의 범죄자들이 CS에 맡긴 자산규모는 1000억 스위스프랑(약 129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CS는 스위스 은행비밀법으로 인해 개인 고객들에 관한 주장에 논평할 수 없다며 관련 보도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CS는 지속적으로 범죄자들을 위해 신규 계좌를 열어주거나 이들의 계좌를 관리해왔다.이 가운데는 필리핀에서 인신매매를 해 종신형을 선고받은 흉악범, 뇌물로 감옥에 간 홍콩 증권거래소 수장, 자신의 여자친구인 레바논 가수 살해를 청부한 억만장자,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 자금을 빼돌린 경영진들, 이집트부터 우크라이나에 이르기까지 각국의 부패한 정치인들이 있다.

필리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그의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 계좌는 물론이고, 나이지리아 독재자였던 사니 아바차 전 대통령에게도 계좌를 열어줬다. 아바차는 6년 집권 기간 최대 50억 달러를 횡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997~1998년 우크라이나 총리를 지낸 파블로 라자렌코도 CS에 계좌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보유한 CS 계좌 가운데 한 곳에는 800만스위스프랑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이후 라자렌코가 집권 기간 2억 달러를 횡령한 것으로 추산했다. 그는 기업들을 협박해 총이윤의 절반을 자신에게 바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라자렌코는 2000년 스위스에서 돈세탁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고, 2006년에는 미국에서 부패혐의로 9년 형을 선고받았다.

2008년 CS에 계좌를 만든 스웨덴 컴퓨터 전문가 스테판 세더홈은 필리핀에서 인신매매를 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뒤에도 2년 반동안 계좌를 유지했다. CS는 그가 유죄를 선고받은 뒤에도 계좌를 폐쇄하지 않고 유지했으며 2013년 세더홈이 계좌 유지를 위한 본인증명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 뒤에야 계좌를 폐쇄했다.

CS 내부고발자는 성명에서 “스위스 은행의 비밀 법규정은 비도덕적인 것이라 믿고 있다”면서 “금융프라이버시 보호라는 구실은 그저 세금을 피하려는 이들의 협력자로서 스위스 은행의 부끄러운 역할을 감추려는 위장일 뿐”이라고 했다.

1856년에 설립된 CS의 최대 소유주는 카타르홀딩, 미국 뮤추얼펀드 제공업체인 해리스 어소시에이츠, 노르웨이 중앙은행과 사우디 올라얀그룹 닷지앤콕스 등이다. 국내에도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 지점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