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에 외계인이 일하고 있다'는 농담은 과거 인텔이 세계 반도체 시장의 기술 리더십을 쥐고 흔들던 시절의 얘기였다. 반도체 종가로 불려온 인텔의 기술력은 그만큼 타사가 넘보기 힘들 정도로 격차가 있었고 세계 전자·IT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하지만 2017년경부터 차세대 공정 이행을 차일피일 미루던 인텔은 결국 삼성전자, TSMC 등 아시아의 반도체 강자들에 완전히 밀리게 됐다. 2017년 계획했던 10나노 중앙처리장치(CPU)는 2년이 지난 2019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경쟁사인 AMD가 한단계 앞선 7나노 CPU를 내놓고 있던 시점이었다.

인텔 기업 로고. /AP 연합뉴스

이후 인텔은 격변의 시기를 맞았다. 팬데믹 상황에서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대란이 벌어지자 미 정치권의 눈이 인텔을 비롯한 반도체 기업을 향하기 시작했고, 미 정부도 미국 반도체 산업의 자존심격인 인텔이 기술적으로 아시아에 밀리고 있는 것을 단순히 산업적인 시각이 아니라 국가 기술경쟁력의 관점에서 보기 시작했다.

◇4년 계획에 5개 노드 발표…"전성기보다 공격적이다"

인텔 내부적으로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기술력의 인텔'이 무색해진 위기의 시간에 인텔 전성기를 이끌었던 베테랑들이 속속 회사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펜티엄 영광의 주역' 중 한 명인 엔지니어 출신의 펫 겔싱어 CEO가 지난해 새롭게 수장에 올랐고, '제온파이'를 설계한 수닐 셰노이을 비롯해 '네할렘'의 주역인 글렌 힌튼 등이 복귀했다.

인텔 관계자는 "펫 겔싱어 CEO의 복귀와 함께 엔지니어 중심의 문화가 다시 회사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있다"며 "인텔은 종합반도체회사로서의 경쟁력 향상뿐만 아니라 과거처럼 재능있는 인재들을 데려오고 육성하고 기술 중심의 회사 분위기를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는 제품 경쟁력에 녹아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증명하듯 17일(현지 시각) 인텔은 '인텔 인베스터데이 2022′를 개최해 앞으로의 야심찬 계획을 공개했다. 특히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부분은 이전보다 훨씬 빨라진 미세공정 혁신 로드맵이다. 이날 인텔은 2나노 이후로 경쟁사 역시 이렇다할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구체적인 1나노대 돌파 계획을 자신감 있게 내놓았다.

펫 겔싱어 인텔 CEO가 17일(현지 시각) 열린 '인텔 인베스터데이 2022' 행사에서 웨이퍼를 들고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이날 인텔은 2나노대 초반 공정으로 추정되는 20A 리본펫(RibbonFET)과 파워비아(PowerVia)를 2024년에 제조할 예정이며 같은해 하반기에는 1나노대 후반으로 예상되는 인텔 18A를 준비 중에 있다. 여기에는 인텔이 업계 최초로 사용하게 될 ASML의 차세대 극자외선(high-NA EUV)을 기반으로 생산될 전망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인텔이 발표한 공정 로드맵은 과거 인텔이 제조 공정을 미세화하는 세대인 틱(Tick)과 새로운 디자인을 채택해 기능을 끌어올리는 세대인 톡(Tock)을 매년 교대로 반복하는 일명 틱톡(Tick-Tock) 전략으로 오히려 무어의 법칙을 앞지를때보다도 빠른 속도"라고 평가했다.

◇차량용 파운드리 시장서 존재감 확대

이번 행사에서 또 눈길을 끈 부분은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 진출이다. 인텔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가 10년 후엔 지금의 2배 가량인 1150억달러로 예상된다"며 "인텔이 가진 포괄적인 솔루션을 자동차 제조업체에 제공하기 위해 자동차 전담 그룹을 만들고 파운드리에서 자동차용 반도체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하면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첫 사업 분야다. 인텔은 작년 4월 200억달러를 들여 미 애리조나에 파운드리 관련 2개 팹(공장)을 구축하겠다고 밝히며 파운드리 사업 재개 계획을 공개했다. 지난달엔 미 오하이오주에 200억달러를 투자해 2개의 첨단 반도체 팹을 짓겠다고 했다. 최근엔 54억달러를 들여 이스라엘 파운드리 업체인 타워반도체를 인수하기도 했다.

타워 세미컨덕터는 자동차와 의료용 기기, 산업용 장비와 일반 소비자용 제품에 필요한 반도체와 회로를 공급하는 회사다. 이스라엘과 미국 캘리포니아·텍사스, 일본, 이탈리아 등에서 CMOS 센서와 아날로그 신호 처리용 반도체 등을 생산한다.

이날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세상은 점점 더 많은 성능 좋은 반도체를 필요로 한다"며 "무어의 법칙(반도체 저장용량이 2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은 죽지 않았다. 인텔이 이를 증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25~2026년에는 인텔 매출이 연간 10~12% 증가하고 두자릿수 성장세가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