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에 있는 자국민들에 즉시 떠날 것을 권고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를 향해 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세계 대전”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전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에 대비해 접경국인 루마니아에 군 병력을 추가 배치한 바 있다. 전 세계가 우려하던 3차 세계대전 발발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각) 버지니아주 컬페퍼에 위치한 저머나 칼리지에서 약값 인하에 대한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NBC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다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미국인 대피를 돕도록 미군을 파견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날 미 국방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백악관이 폴란드에 주둔 중인 미군을 동원해 러시아 침공시 우크라이나를 탈출하는 자국민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미 국무부도 이날 자국민 여행 경보를 통해 “러시아 군사 행동 위협의 증가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으로 우크라이나로 여행하지 말라”며 “우크라이나에 있는 사람은 상업용이나 민간 운송 수단을 통해 지금 떠나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미 국무부는 두 차례에 걸쳐 우크라이나에 머물고 있는 자국민의 출국 권고를 발표했다. 지난달 23일에는 현지 공관 비필수 인력의 출국 허용, 공관 직원 가족의 철수 지시, 미 시민의 출국 권고를 발표한 데 이어, 같은 달 30일에는 주우크라이나 대사관 안내를 통해 재차 자국민의 대피를 촉구했다.

이날 미 국무부의 세 번째 출국 권고는 러시아가 벨라루스와 열흘간 진행할 합동 군사훈련을 앞두고 전날 우크라이나 북쪽 국경에 추가 병력을 집결한 가운데 나왔다.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가 기존 국경 지역에 배치한 병력과 더불어 벨라루스의 군사력까지 동원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다고 우려 중이다.

러시아는 이날 시작되는 벨라루스와의 합동 군사훈련에 자국 병력 수천명과 S-400 지대공미사일, 판치르 대공방어체계, Su-35 전투기 등 최첨단 러시아 무기를 대거 투입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동유럽에 배치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에 대응한 방어훈련에 불과하다며 훈련이 끝나면 자국군을 본토에 복귀시킬 것이란 입장을 밝혔지만, 군사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동원한 합동 군사훈련이 2월에 열리는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이에 맞서 이날부터 군사훈련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올렉시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 장관은 무인기, 대전차 미사일 등 미국과 나토 동맹국 측에서 지원한 무기로 무장하고 20일까지 훈련한다며 “국경 인근에서 벌어지는 러시아군의 훈련에 대응하는 성격”이라고 전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러시아가 이제까지 14만명에 이르는 병력을 국경 지역에 배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앞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기 위해 17만5000명까지 병력을 늘릴 것으로 예상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서방국가와 러시아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10일(현지 시각) 루마니아 름니쿠블체아의 군기지에 미군 장갑차가 트럭에 실려 도착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비해 독일 빌섹 군기지에 주둔 중인 자국 병력 1000명과 장비를 루마니아에 파견해 재배치 중이다. /연합뉴스

유럽에서는 러시아 병력이 일단 벨라루스에 배치된 이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지 않더라도 나토의 동쪽 측면에 새로운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일부 유럽의회 의원은 최근 유럽연합(EU) 지도부에 보낸 서한에서 “벨라루스 주둔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그리고 전체 유럽에 대한 위협”이라며 “러시아는 궁극적으로 벨라루스를 점령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중재 외교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러시아가 동시다발적인 무력시위를 벌이는 것은 이를 지렛대 삼아 협상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뉴라인스 인스티튜트의 유진 차우소브스키 유라시아 지정학 분석가는 “러시아는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신호를 보내면서 우크라이나와 서방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와 이해를 이끌어내려 한다”며 “러시아는 무력시위를 수단으로 서방에 유럽의 안보 질서를 다시 쓰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부터 지속해서 서방 측에 안보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 안보를 위해선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불허하고 나아가 동진(東進)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나토는 이에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나,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핀란드화’를 거론하면서 러시아 측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핀란드화는 서방과 소련간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 소련과 국경을 맞댄 핀란드가 소련의 대외정책을 추종한 사례를 가리키는 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