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에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조건으로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앞서 한국 정부가 CPTPP 가입 추진 의사를 밝힌 뒤 일본 측에서 이를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문제와 결부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긴 했으나, 일본 언론이 관련 보도를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시다 후미오(왼쪽 두 번째) 일본 총리가 2021년 10월 17일 오전 후쿠시마 제1 원전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6일 “한국의 CPTPP 가입 절차에서 수산물 수입규제 해제도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 정부는 후효히가이(風評被害·풍평피해) 대응도 강하게 요구받게 될 것 같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국 해양수산부 자료를 인용해 올해 들어 11월까지 국내에서 일본산 수산물의 산지를 위장했다가 적발된 사례가 2019년(전체) 137건보다 50%가량 더 많은 203건에 달한다고 전했다.

후효히가이는 ‘근거 없는 소문으로 생기는 피해’를 의미하는 일본어다. 한국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후쿠시마현과 미야기현 등 일본 동북지방 8개현에서 잡은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다핵종(多核種)제거설비(ALPS)로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트리튬) 등 방사능 물질의 위험성을 근거로 내린 결정이었으나,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한국 정부가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CPTPP에 가입하려면 일본을 포함한 모든 회원국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은 세계 각국을 상대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재개를 요구한 이력이 있어 CPTPP 가입과 수산물 수입규제를 결부짓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여당인 자유민주당을 비롯한 일본 정치권은 자국 수산물에 대한 한국의 규제 정책을 수시로 문제 삼아왔다. 가네코 겐지로 일본 농림수산상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CPTPP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CPTPP의 높은 수준을 완전하게 채울 준비가 돼 있는지 어떤지에 대해서 우선 제대로 판별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자민당 소속인 가네코 농림수산상은 아베 신조 전 정권에서 참의원 예산위원장을 지냈다.

대만의 경우 일본 측에 먼저 규제 해제 가능성을 내비쳤다. 대만은 지난 9월 CPTPP 가입 교섭을 하면서 후쿠시마산 생산품 등 일본 식품에 대한 수입규제 해제를 일본 측과 협의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다만 한국이 대만의 선례를 따를지는 미지수다. 후쿠시마산 수산물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5일 CPTPP 회원국과의 접촉에 관해 “일본의 경우 다른 문제와 연계되며 소극적이어서 접촉이 많지 않았고 많은 성과가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