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의 지배자격인 인텔이 팬데믹 시국에서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만년 2위였던 AMD의 성장세가 심상치않다. 특히 지난 3분기 실적에서 인텔이 시장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표로 주가가 급락한 반면 AMD는 분기 최대 실적을 거두면서 인텔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으며, 인텔의 ‘돈줄’이나 다름없는 서버용 CPU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2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AMD 웹컨퍼런스에서 마크 페이퍼마스터 AMD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코로나19로 반도체 공급망이 병목현상을 빚고 있는 가운데 AMD가 이같은 고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정확한 수요예측’과 이를 통한 ‘공급망 정비’를 가장 중요한 비결로 꼽았다.

앞서 AMD는 올 3분기에 매출액은 43억1300만 달러(약 5조300억원)로 전년보다 54%, 영업이익은 9억4800만 달러(약 1조1000억원)를 기록해 전년보다 111% 증가했다고 밝혔다. 영업이익률도 22%로 6%포인트 늘었다. 팬데믹 와중에 다른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이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AMD는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리사 수 AMD CEO가 CES 2021 기조연설에서 새 모바일 프로세서를 소개하고 있다. /AMD 유튜브 캡처

반면 인텔은 매출이 192억달러(약 22조6천억원)에 당기순이익이 68억 달러(약 8조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 순익도 60% 늘었지만 SK하이닉스에 매각한 낸드플래시사업부 실적을 제외한 매출은 181억 달러로 월가 예상치(182억달러)를 밑돌았다. 특히 인텔 최대 사업부인 클라이언트 컴퓨팅그룹 매출이 전년보다 2% 감소했다.

반도체 공급난으로 PC 출하가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인텔의 실적이 예상치를 밑돈 반면 AMD가 최대 실적을 기록한 이유는 경영진의 ‘포트폴리오’ 관리가 빛을 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AMD 측은 고사양 CPU 수요가 높아질 것을 예상해 고성능 칩 생산 비중을 높였고, 칩의 평균판매가격이 높아지면서 매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

로이터통신은 “AMD는 이번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를 예상해 주력 모델인 중저가 라인업 생산을 줄이고, 대신 평균판매단가가 높은 고부가 가치제품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며 “이는 출하량 기준으로는 점유율이 하락했지만, 매출액 기준으로 점유율을 올리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마크 페이퍼마스터 AMD CTO는 “회사의 전문가들은 몇 달부터 몇 년후 공급망 상황에 대한 예측을 확실히 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특히 AMD는 팬데믹 초기부터 반도체 공급부족을 예상해 각 분야별로 공급능력을 확보하는 전략을 세웠다”고 강조했다.

특히 인텔의 텃밭인 서버용 CPU 시장에서 AMD의 약진은 인텔 입장에서 가장 뼈아픈 부분이다. 그동안 인텔은 PC 시장은 내주더라도 서버 시장에서의 압도적 점유율로 수익성을 개선해왔다. 서버 분야는 기존 데이터센터와 호환이 필수적이며 CPU로 교체 작업이 쉽지 않아 진입 장벽이 높다. 그렇기에 AMD가 쉽게 점유율을 늘리지 못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데이터센터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서버용 CPU에서 AMD의 점유율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 7% 수준에서 올해 1분기에는 8%, 2분기에는 10% 수준에 근접했으며 내년에는 15%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철옹성 같았던 인텔의 지배력이 서서히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다.

리사 수 AMD CEO는 지난달 3분기 실적 발표에서 “AMD는 하이엔드 칩뿐만 아니라 가능한한 많은 칩을 판매하는 것이 목표이며, 녹록치 않은 공급망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며 “내년 역시 서버용, 소비자용 등 각 부문의 PC 교체 수요를 노려 지속적인 성장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