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최대의 ‘앙숙’으로 예멘 내전과 시리아 내전 등 중동의 주요 분쟁에 빠지지 않고 개입해 반복과 갈등을 이어온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관계 정상화를 위해 성큼 다가서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 외교장관의 지난 15일(현지 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를 통해 알려졌다.

예멘 내전의 참혹한 현장. 예멘 내전은 2015년 3월부터 정부군을 지원하는 사우디와 후티 반군을 돕는 이란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국토 곳곳이 황폐화되고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14만명이 목숨을 잃었다./트위터 캡처

알 사우드 외교장관은 인터뷰에서 “지난 4월~9월까지 이란과 네 차례 회동을 갖고 사우디 제다에 이란 총영사관을 재개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혀 각각 이슬람 양대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를 대표하는 종주국인 사우디와 이란이 2016년 단절된 외교관계 복원을 위해 물밑 협상을 벌여온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협상은 탐색전의 성격이었지만, 대화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도 했다.

앞서 지난달에는 유엔총회가 열리던 뉴욕에서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교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걸프 국가 관계자들과 만나 지역 현안 등을 논의했다고 이란의 메르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8월 보수 강경 성향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이끄는 이란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양측 간 대화는 더욱 폭넓게 진행되는 모양새다.

복잡해보이는 중동 관련 군사 분쟁을 이해하는 가장 명료한 키워드는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맹주 이란의 반목과 갈등’이다.

수니파 진영과 시아파 진영의 대리전 양상을 보이는 예멘 내전을 보면 이해가 쉽다. 예멘의 경우 2800만 명의 인구가 수니파(56%)와 시아파(44%)로 나뉜 것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어느 쪽이 정권을 잡아도 언제나 상대 종파를 억누르는 정책을 폈기에 쿠데타가 끊이지 않았다.

시리아 내전은 더 복잡한 양상이다. 정부군과 반군뿐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 이스라엘,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레바논(헤즈볼라 민병대), 터키 등 중동지역의 여러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해 제각기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해마다 적게는 5만 명, 많게는 7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시리아는 최대 난민 배출의 불명예를 썼다.

미국과 러시아의 개입은 시리아의 아사드 독재 정권 유지와 내전 장기화에 기여했다. 미국은 애초 온건 수니파 성향의 반군을 지원해 이란의 지원을 받는 아사드 대통령의 시아파 정권을 축출할 계획이었다. 시리아 인구 1800만명 가운데 수니파가 74%, 아사드가 속한 시아파가 13%로 소수다.

하지만 아사드 정권이 시리아에서 세력을 넓힌 급진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를 적으로 공표하면서 미국 입장이 곤란해졌다. 아사드를 놓아두는 것이 미국의 IS 격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중동정책은 중동석유의 안정적 확보와 이스라엘 안보 유지가 핵심이다. IS가 시리아를 점령했다면 이스라엘 안보의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기에 미국은 아사드 축출을 유보했다. 적(IS)의 적(아사드 정권)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전통적으로 시리아와 가까웠던 러시아는 겉으로는 미국의 IS 격퇴전에 동참하면서 속으로는 시리아 내 반군을 공격해 아사드 정권을 도왔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교리와 의견 등에서 상당 부분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슬람교 성서인 쿠란을 따르고 무하마드의 신성함을 인정한다. 수니파는 공공·정치의 영역 등 세속적 삶에도 신의 힘이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시아파는 종교적 희생과 순교에 더 무게를 둔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예언자 무하마드는 632년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은 채 사망했다. 이후 누가 이슬람교를 이끌 것인가를 놓고 신도들 사이에서 격한 논란이 오갔다. 이슬람 신권 정치의 최고 지도자 칼리프(Caliph)를 신도들의 추대를 통해 정해야한다(수니파)는 측과 예언자 무마하드의 혈통이 칼리프가 돼야한다(시아파)는 측이 맞섰다.

결국 1대 칼리프 자리는 무하마드가 신뢰하던 신하, 아부 바르크에게로 돌아갔다. 수니파의 승리였다. 그러나 시아파는 여전히 무하마드의 사위이자 사촌인 알리가 지도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리는 딸만 4명 있는 무하마드와 가장 가까운 남성 인척이라는 이유로 적통성을 인정받았다.

오랜 종파 분쟁 라이벌이지만 국교를 유지해오던 두 나라의 관계는 2015년부터 급속도로 악화했다. 이해 3월 사우디가 친이란 성향의 예멘 후티 반군을 공습하면서 본격적으로 내전에 개입했다.

사우디와 이란 비교.

그로부터 여섯 달 뒤에는 사우디에 있는 이슬람 성지 메카에서 일어난 대규모 압사 사고로 이란 순례객들이 대거 희생됐다. 그러자 이란이 사우디 당국의 책임론을 거론하고 사죄를 요구하면서 양국 관계가 더욱 경색됐다. 여기에 2016년 1월에는 사우디가 반체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시아파 무슬림들을 처형하자 이에 반발한 이란인들이 자국 수도 테헤란과 제2도시 마슈하드에 있는 사우디 공관을 화염병 등으로 급습하면서 양국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며 결국 파탄에 이르렀다.

일각에서는 두 나라의 해빙 무드에 미국이 물밑에서 관여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코너에 몰렸던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후 최우선 중동 전략으로 이란 핵 합의 복원에 주력하고 있다. 제니퍼 가비토 미 국무부 부차관보는 최근 미 CNBC 인터뷰에서 “지역 안정에 도움이 되는 두 나라의 대화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란의 행보 역시 핵 합의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우디 정부 당국자는 FT에 “이란은 (핵 합의 파트너인) 서방 국가들에 ‘사우디와의 문제를 해결하듯 핵 합의 복귀 문제도 함께 협력할 수 있으니 우리를 정상 국가로 대우해달라’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일방 탈퇴한 이란 핵 합의 복원을 목표로 올 상반기 이란과 간접적으로 협상을 벌여오다 이란 정권 교체로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의 목표는 이란 핵 합의를 복원하되, 미국에 유리한 조항을 최대한 삽입한다는 입장이어서 실제 핵 합의 복원으로 신속하게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두 나라의 행보에는 급박한 내부 사정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란은 경제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의 석유 금수 조치 해제가 절실하다. 사우디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탈(脫)석유 경제 개혁을 안정적으로 진행하려면 주변 지역 안정이 중요하다. 양국의 데탕트는 당장 국제유가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는 “국제 유가의 급변동 요소인 지정학적 리스크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두 산유국이 손을 맞잡고 국제 유가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두 나라의 해빙의 최우선 수혜자는 내전으로 황폐화된 예멘이 될 가능성도 있다. 예멘 내전은 2015년 3월부터 정부군을 지원하는 사우디와 후티 반군을 돕는 이란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국토 곳곳이 황폐화되고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14만명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