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미군에 협력했던 아프간 통역의 가족에게 사형판결을 전하는 통지문을 보냈다고 미 CNN이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CNN은 이날 세 통의 통지문을 입수해 이같이 보도했다. 탈레반은 먼저 손으로 쓴 첫 통지문에서 미군 통역으로 활동했던 아프간 주민의 가족에게 재판에 나오라고 명령했다. 마찬가지로 수기로 작성된 두 번째 통지문에서는 해당 가족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음을 했다.

마지막으로 타이핑된 세 번째 통지문에서 탈레반은 "침략자들에 대한 맹종을 중단하라는 경고를 거부하고 재판 출석요구를 무시했다"며 사형 판결을 예고했다. 통지문에는 "법원의 이러한 결정은 최종적이고 당신에게는 거부할 권리가 없다"고 적혔다.

이들 통지문은 탈레반이 공문서에 쓰는 표식과 함께 지난 3개월 간 차례로 날아든 것으로 전해졌다. CNN은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통지문을 받은 당사자와 그의 가족의 신원은 밝히지 않겠지만, 과거 해당 통역과 함께 활동한 전직 미군에게서 이러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탈레반이 미군 통역 가족에게 보낸 사형 통지문. /CNN

탈레반은 지난 15일 아프간을 재장악한 뒤 17일 연 첫 기자회견에서 미군 조력자들에 대한 사면령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포용적인 정부를 꾸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과는 달리 곳곳에서 탈레반의 보복적 처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18일에는 아프간 바드기스주(州)의 하지 물라 아차크자이 경찰청장이 총살당했으며, 19일에는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 소속 기자의 가족 중 한 명이 살해됐다.

미국이 당초 밝힌 대로 오는 31일까지 전원 구출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아프간에 남은 미국인들 역시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영국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8월 31일이 레드 라인"이라고 강조하며 미국이 이를 어기고 자국민을 그 이후까지 남아있게 하면 "그에 대한 반격을 감수해야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문제는 서방에서 이달 말 시한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24일 화상으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시한 연장을 압박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전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우리와 군 사이에 연장에 관해 진행 중인 논의가 있다"고 말했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추가 파병 가능성까지 시사한 상태다.

다만 일각에서는 새 정부 수립과 국제사회의 합법성 인정이 시급한 탈레반이 상황에 따라 추가 연장에 동의할 가능성도 있다는 낙관론이 나오고 있다. AP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전날 미국의 희망은 연장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지만 관련 논의가 있다고 한 발언에 대해 탈레반과 협의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도 31일 이후에도 대피가 이뤄지도록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과 함께 탈레반과 협의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21년 8월 21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아프간 피란민들이 미 공군 C-17 수송기에 탑승해 있다. /미 공군

미군은 22일부터 이날 오전까지 24시간 동안 아프간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에서 28대의 항공기로 1만400여명을 철수시켰다. 존 커비 국방부 수석 대변인은 "앞으로도 탈레반 지도자들과 협의해서 출국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모두 카불공항에 도착할 수 있도록 협조를 얻어 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밀려드는 피란민으로 카불 공항 접근은 여전히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미군은 이날도 군용 헬기 한 대를 동원해 16명의 미국인을 비행장으로 옮겼다. 미군은 앞서 육군 헬기 세 대를 공항 밖 호텔로 보내 169명의 미국인을 비행장으로 수송한 적이 있다.

탈레반이 아프간인의 카불 공항 접근을 막고 있다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22일 미 NBC에 따르면,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관은 21일 본국에 보낸 전문에서 현지인 직원들이 공항 근처의 검문소를 지키던 탈레반으로부터 욕설을 듣거나 구타를 당하고 쫓겨났다고 밝혔다.

탈레반이 집에 스프레이로 표시를 한 직원도 있다. 이는 과거 탈레반이 추가 심문을 위해 식별용으로 사용하던 수법이다. 이 직원의 가족은 도피를 위해 집을 나섰지만 공항에 들어가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카불 함락 직전인 지난 14일부터 착수한 작전으로 지금까지 3만7000명을 대피시켰고, 이 중 다수는 아프간 현지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행크 윌리엄스 미 합참부의장은 이날 아프간에서 도착하는 이들을 위한 임시 거처로 버지니아, 텍사스, 위스콘신에 이어 네 번째로 뉴저지주의 미군 부대를 추가로 선정했다며 이곳에 거주하게 될 2만5000명 중 1200명만 아프간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