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기업들이 자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00만회분 공급 계약을 이끌어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전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1위 TSMC와 애플 아이폰이 조립업체로 널리 알려진 폭스콘은 지난달부터 대만 정부를 대신해 백신 확보 협상을 추진해왔다.

2021년 7월 8일 대만 타이베이 인근 타오위안 국제공항에서 일본이 제공한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이 하역되고 있다. /대만 질병통제센터

WSJ에 따르면, 중국 푸싱제약과 독일 바이오엔테크는 이날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TSMC와 궈타이밍(郭台銘) 폭스콘 창업자 소유 자선재단에 총 1000만회분의 백신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푸싱제약은 바이오엔테크가 미국 화이자와 개발한 백신에 대한 중국 본토와 홍콩, 마카오, 대만 독점 판매권을 갖고 있다.

TSMC와 폭스콘도 이날 별도의 성명을 통해 푸싱제약과의 백신 구매 계약이 최종 서명 단계만을 남기고 있다고 확인하고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공식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협상 타결과 함께 백신은 유럽의 생산 공장에서 출발해 중국 본토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만에 배송될 예정이다. 백신은 이후 대만 보건 당국에 기증돼 전국에 배포될 전망이다.

대만 정부는 앞서 지난달 이들 기업에 백신 구매 협상 권한을 공식 부여했다. 당초 백신을 직접 구매하기 위해 바이오엔테크와 협상을 벌였지만 백신 구매에는 이르지 못한 까닭이다. 이와 관련,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당시 “바이오엔테크와 계약 체결이 가까웠지만, 중국의 개입으로 성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맥락에서 대만 정부는 중국 정부가 백신 기부 의사를 밝혔을 때도 “호의를 가장한 위선적 행위”라고 반발하며 거부했다. 다만 대만 야당 국민당은 중국 관변단체와 시노팜 백신 500만회분,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 500만회분을 기증받기로 합의했다. 중국과 인접한 대만의 섬 진먼다오(金門島)에서도 지방정부가 중국 적십자회와 합의해 백신을 기부받기로 했다. 현 진먼다오현 현장(縣長)은 국민당 소속이다.

중국 정부는 대만 측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면서도 ‘대만은 푸싱제약을 거쳐서만 백신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는 중국이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며 독립적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하나의 중국’ 기조에 따른 것이다. 푸싱제약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대만을 ‘대만 지역’이라고 언급하며 이 원칙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 /로이터 연합뉴스

올 초까지만해도 방역 선진국으로 평가받던 대만에서는 지난 5월부터 코로나19가 재유행하고 있다. 재유행이 본격화된 5월 17일부터 6월 6일까지 신규 확진자 수는 무려 300~500명대를 오갔고, 이 기간 일일 사망자 수는 20~30명에 달했다. 모두 대만 인구(2357만명)를 고려하면 굉장히 높은 수치다. 이날 기준 대만의 누적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각각 1만6249명, 740명이다.

더 심각한 건 백신 접종 현황이다. 현재 대만에서 2차까지 백신 접종을 완료한 인구는 전체의 0.26%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가 6월 초까지 겨우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87만회분을 확보하는 데 그친 영향이 컸다. 이후 일본과 미국이 각각 124만회분과 75만회분의 백신을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재유행으로 대만 각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대만 최대 반도체 검사업체인 징위안전자에서 발생한 집단감염 사례가 대표적이다. 징위안전자와 인근 4개 반도체업체에서는 지난달 4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수일간 조업을 중단했다. 반도체 산업은 대만 GDP의 15%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단기간에 그쳤더라도 조업 중단으로 인한 피해는 계속해서 불어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6월 3일에는 대만야구협회가 도쿄올림픽 최종 예선 참가를 포기했다. 대만 야구는 세계 랭킹 2위로, 올림픽 메달을 기대할 정도로 온 국민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종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