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12일(현지시각) 나스닥 시장 상장을 앞둔 가운데, 공모 참여 과정에서 중국과 홍콩 투자자를 전면 차단했다. 사상 최대 규모 기업공개(IPO)에서 특정 국가 자본만 골라 배제하는 조치다. 무역에서 시작한 미국과 중국 사이 디커플링(탈동조화·상호 의존을 끊는 흐름)이 첨단 기술 기업 자본 조달 단계까지 번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11일 뉴욕타임스(NYT)는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 5명을 인용해 스페이스X가 이번 상장에서 중국 본토와 홍콩 소재 투자자 자금을 받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스페이스X는 이번 상장에서 5억5560만 주를 공모한다. 현지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중국 본토와 홍콩 투자자가 미국 대형 IPO에서 통째로 배제당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미국 AI 반도체 기업 세레브라스가 상장할 때는 중국·홍콩 투자자가 공모에 참여했다.
인공지능(AI) 기업 오픈AI도 올해 안에 마칠 상장에서 같은 제한을 둘 가능성이 크다. 오픈AI는 앞선 비공개 자금 조달 단계에서 이미 중국 투자자를 받지 않았다. 두 회사 모두 중국 자본을 배제한 이유는 공개하지 않았다. 미 행정부가 직접 관련 지시를 내렸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두 회사 모두 미 정부가 최대 거래 상대다. 스페이스X는 지난해 미 정부와 거래로 약 40억 달러(약 6조1000억 원) 매출을 올렸다. 오픈AI는 올해 미 국방부 기밀 시스템에 AI 기술을 공급하기로 했다. 안보 사업 비중이 큰 만큼, 중국 자본이 지분을 타고 들어와 향후 정부 사업 수주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을 미리 차단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 정부는 그간 중국 자본의 미 기술기업 투자를 겹겹이 걸러 왔다.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외국 자본의 미국 기업 투자를 안보 관점에서 심사하는 기구)가 민감 분야 투자를 들여다보고, 국방부는 텐센트·알리바바·바이두·비야디(BYD) 등 중국 대표 기업을 '중국군 연계 기업' 명단에 올렸다. 조 바이든 전 행정부는 양자컴퓨팅·반도체·AI 분야 등 첨단 산업 전반에 걸쳐 대중 투자를 제한했다. 웰스파고 중국 법인 고위 임원 출신인 한 린은 NYT에 "이번 제한은 국가 안보와 지식재산 보호, 데이터 통제 우려를 이유로 중국 투자를 꺼리는 미국 기술·AI 기업들의 폭넓은 인식을 반영한다"고 했다.
중국 본토와 홍콩 현지 투자자들은 사상 최대 상장 기회를 앞두고, 공식적인 투자 길이 막히자 가상자산으로 우회로를 뚫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일 중국 투자자들이 디지털 자산을 이용해 당국의 자본 통제를 피하고 스페이스X와 오픈AI 같은 미국 인기 비상장 주식에 간접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중국 정부가 지정한 연간 1인당 외화 환전 한도(5만 달러·약 7600만 원)를 피해 위안화로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를 사들인 뒤, 미공개 주식 가치를 따라가도록 설계한 토큰을 산다.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겟이 4월 내놓은 스페이스X 연동 토큰 프리스팍스(preSPAX)에는 구매자 1만4435명이 몰렸다. 중국 정부가 이달 초 자국 자본의 해외 유출 규제를 한층 조이면서 이런 우회 수요는 더 커지는 양상이다.
이런 토큰은 실제 기업 주식 소유권이나 의결권과 무관하다. 스페이스X와 오픈AI는 이런 이면 거래를 인정하지 않는다. 가상자산 전문 변호사 티머시 스팽글러는 FT에 "(중국의) 많은 투자자가 법적으로 집행할 수 없는 약속에 막대한 돈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스페이스X가 상장을 앞두고 중국 자본을 밀어냈지만, 미래 사업 핵심 소재 공급망을 여전히 중국에 기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는 2030년대 초부터 매년 100기가와트(GW) 규모 태양광 AI 데이터센터를 지구 궤도에 올리겠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11일 이 구상에 필요한 자재만 연간 약 100만톤에 이르는데, 우주용 고효율 태양광 패널 소재인 갈륨 비소의 원료 갈륨을 사실상 전량 중국이 생산한다고 짚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 금지에 대응해 미국행 갈륨 수출을 막고 있다. 대안인 폴리실리콘 패널도 세계 생산능력의 약 93%가 중국에 몰려 있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피클링은 12일 "워싱턴의 핵심 지정학 경쟁국에 하드웨어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한, 궤도로 가는 길은 과거보다 훨씬 험난해진다"고 지적했다.
중국 우주 업계는 스페이스X 상장을 추격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1일 스페이스X의 기록적 상장이 우주 산업에 자본을 끌어모으면서 중국 신생 우주 기업들도 잇따라 증시 입성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중국판 스페이스X'로 랜드스페이스를 꼽았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중국 기업 최초로 재사용 로켓 시험에 성공했고, 현재 상하이증권거래소 커촹반(科創板·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기술기업 전용 시장) 상장을 추진 중이다. 상장 투자설명서에는 "스페이스X의 선점 우위에 맞서겠다"며 한 문서에서 스페이스X를 37차례 언급했다. 중국판 스타링크로 불리는 위성 인터넷망 '첸판(千帆)'은 지금껏 저궤도 위성 200기 이상을 띄웠다. AI 위성 기업 ADA스페이스는 5월 14일 홍콩 증시에 상장 예비 서류를 냈다.
중국 정부도 관련 빗장을 풀고 관련 기업을 독려했다. 지난해 11월 스페이스X가 94번째 스타링크 위성 발사 기록을 세우자, 중국 국가항천국(CNSA)은 같은 달 국가 과학연구 프로젝트를 민간 기업에 개방하는 행동계획을 내놨다. 중국 우주 산업 전문 컨설팅사 블레인 쿠르시오는 경제 전문 매체 포춘에 "중국은 머스크 행동을 매우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며 "중국에서는 스페이스X가 이룬 성과가 어떤 기준으로 봐도 대단히 인상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