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시 3대 지수가 중동 지역 지정학적 긴장 고조와 인공지능(AI) 관련 기술주 투매 현상이 맞물리며 일제히 하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향해 강력한 추가 공격을 예고하자 국제 유가가 뛰었고, 이는 다시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극하며 투자 심리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10일(현지시각)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우량주 중심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953.33포인트(1.87%) 떨어진 4만9918.78에 거래를 마쳤다. 대형주 중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119.66포인트(1.62%) 하락한 7266.99로 마감했다. 기술주 중심 나스닥종합지수 역시 509.32포인트(1.98%) 급락한 2만5169.50에 장을 닫았다.
이날 미국과 이란이 무력 충돌을 재개하면서 증시를 짓눌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 위를 비행하던 미국 아파치 헬기가 격추된 사건을 두고 이란을 배후로 지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란이 협상을 너무 오래 끌었다며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중앙사령부 역시 "헬기 격추에 대응해 이란에 타격을 가했다"고 발표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전쟁 위기감이 짙어지면서 국제 유가는 즉각 반응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2.07% 오른 배럴당 90.03달러를 기록했고, 브렌트유 역시 1.8% 상승한 93.10달러로 장을 마쳤다.
전문가들은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시장이 감당해야 할 충격파를 우려했다. 아전트 캐피털 매니지먼트 소속 제드 엘러브룩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이란과 벌이는 전쟁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며 "투자자들이 현재 투자 환경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이토로 소속 브렛 켄웰 전문가 역시 "투자자들은 중동에서 빠른 평화 협정이 맺어지기를 기대했지만 사태 해결이 늦어질수록 유가는 높게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유가 상승은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진다. 이날 미국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과 비교해 4.2% 올랐다. 이는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물가 상승률은 2.9%를 기록하며 시장 예상치에 부합했다. 하지만 에너지 가격 급등이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면서 미국 국민이 받는 실질 임금 상승분은 사실상 지워졌다. 물가를 조절해야 하는 연방준비제도 입장에선 금리를 내리기 더 까다로워졌다. 노스라이트 애셋 매니지먼트 소속 크리스 자카렐리 전문가는 "중동 사태가 해결되고 물류가 정상화하면 연방준비제도가 금리 인상을 보류할 수 있지만, 지금 상황이 이어지면 모든 예측은 무의미해진다"고 했다.
여기에 그동안 시장 상승을 주도했던 인공지능 기술주들이 일제히 무너지며 지수 하락을 부추겼다. S&P500 기술주 부문은 2.3% 하락했다. 특히 반도체 기업들 낙폭이 컸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와 AMD, 브로드컴 등 주요 반도체 종목이 모두 떨어졌다. 반도체 관련 주식들을 모아놓은 아이셰어즈 반도체 상장지수펀드(ETF)는 3% 이상 급락했다.
시장에서는 인공지능 관련 주식들이 단기간에 너무 올랐다는 거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 기업들이 증자와 지분 매각 같은 형식으로 주식을 시장에 풀고 있어 수급 부담도 심해졌다. 인공지능 서버용 컴퓨터를 만드는 슈퍼마이크로 컴퓨터는 주식 발행을 통해 70억 달러를 조달하겠다고 발표한 뒤 주가가 20% 넘게 폭락했다. 네이션와이드 소속 마크 해켓 전문가는 기술주들이 역사적인 상승세 이후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며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 상장과 구글, 메타 등 대규모 자금 조달에 참여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기존 주식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별 기업 이슈에 따라 주가 희비도 크게 엇갈렸다. 아마존이 자사 화물 운송망을 외부 기업에도 개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기존 물류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올드 도미니언 프레이트 라인 주가가 6% 넘게 떨어졌고 아크베스트, 사이아 등 대형 화물 운송업체 주식도 줄줄이 미끄러졌다. 반면 미국 남부 가정식 레스토랑 체인인 크래커 배럴은 예상을 깨고 깜짝 흑자를 기록하며 연간 실적 전망치를 올려 잡은 덕분에 주가가 24% 이상 폭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