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와 산리오, 소니 등 일본 대표 콘텐츠 기업들의 주가가 올해 들어 일제히 하락하고 있다.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으로 시장 자금이 기술주로 이동한 데다 AI가 게임·애니메이션·캐릭터 산업의 경쟁 구도를 바꿀 수 있다는 우려까지 커지면서 투자 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산리오 대표 캐릭터들(왼쪽)과 슈퍼 마리오 갤럭시 포스터./각각 산리오, 닌테도 인스타그램 캡처

9일(현지시각)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수요 급증에 힘입어 급등했던 일본 게임·애니메이션 기업들의 주가가 올해 들어 줄줄이 하락하고 있다. 닌텐도 주가는 이날 기준 연초 대비 약 30% 하락했고, 소니와 반다이남코는 각각 13%, 11% 떨어졌다. 헬로키티 운영사 산리오는 9% 하락했으며, '원피스'와 '드래곤볼' 제작사 도에이애니메이션과 '파이널판타지' 개발사 스퀘어에닉스홀딩스도 각각 13%씩 내렸다.

시장에서는 가장 큰 원인으로 AI 투자 열풍을 꼽는다. 생성형 AI 수요 확대와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경쟁이 이어지면서 투자 자금이 콘텐츠 기업에서 AI 관련 기술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셋매니지먼트원의 모리 유키 펀드매니저는 "AI 랠리로 인해 투자자들이 엔터테인먼트 종목에서 자금을 빼내 기술주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AI가 콘텐츠 산업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주가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생성형 AI를 활용하면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제작 비용을 낮추고 생산 속도를 높일 수 있지만, 기존 콘텐츠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산리오의 경우 헬로키티 등 자사 캐릭터 IP가 AI로 생성된 캐릭터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실제로 생성형 AI는 콘텐츠 제작 분야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프리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제작에 활용되는 생성형 AI 시장 규모는 올해 15억달러(2조2852억원)에서 2035년 310억달러(47조2285억원) 이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게임기 제조 등에 필요한 메모리와 반도체 가격 상승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도토키 히로키 소니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메모리 가격 상승은 제조 비용 증가를 의미한다"며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경우 게임 콘솔 보급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닌텐도는 일본에서 판매되는 '닌텐도 스위치2' 가격을 1만엔 올렸다.

AI 관련 종목으로 자금이 쏠리면서 일본 대표 콘텐츠 기업들의 기업가치 평가도 낮아지고 있다. 향후 실적 전망을 반영하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을 보면 산리오는 1년 전 40배 이상에서 최근 17배 수준으로 떨어졌다. 닌텐도는 41배에서 21배로, 소니는 24배에서 16배로, 게임사 캡콤은 36배에서 19배로 떨어졌다.

다만 전문가들은 일본 콘텐츠 산업의 성장 가능성 자체가 훼손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일본 정부는 콘텐츠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2033년까지 해외 매출을 20조엔(190조100억원) 규모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우에하라 마사히로 스미토모미쓰이DS자산운용 매니저는 "산업의 구조적 악화가 나타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AI가 콘텐츠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중요한 것은 기업들이 기존 팬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팬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으로 IP를 육성할 수 있느냐"며 "브랜드 경쟁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기업이 앞으로도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